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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 장군 생가지 복원에 김복동 장군이 큰 도움 줘"

오는 10월 24~25일, 청산리대첩 승전 100주년 기념행사 예정

2020.07.15(수) 09:33:00 | 홍주신문 (이메일주소:rlarudal4767@daum.net
               	rlarudal4767@daum.net)

"김좌진 장군 생가지 복원에 김복동 장군이 큰 도움 줘" 1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을 승리로 이끈 백야 김좌진 장군은 올해 1월 24일로 1930년 순국한 지 90주기를 맞았다. 특히 일본군과의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청산리전투 승전 100주년이 되는 해로 그 의미가 더해진다.

백야 김좌진 장군은 안동김씨 수북공파 10세손으로 갈산지역 부호출신이다. 대한제국 말기였던 1889년 12월 16일 갈산에서 태어났으며 유년시절부터 계몽의식을 갖게 돼 민족계몽운동과 항일독립운동에 힘썼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세 살 때 형 김경진이 15촌 아저씨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됐으며, 1904년 열다섯 살 때 집안 대대로 부리던 노비 50명의 노비문서를 불사른 뒤 전답을 나눠줬으며, 1905년에는 서울로 올라가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졸업했다.


1907년 갈산에 호명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교육했으며, 1911년 북간도에 독립군사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부호들을 상대로 군자금 모금에 나섰다가 2년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출소 이후 1916년 대한광복회에 가담해 항일 독립투쟁을 전개했다. 1919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권고를 받아들여 대한정의단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개칭, 소속 무장독립군의 총사령관이 돼 독립군 편성에 주력했다.

1920년 10월에는 같은 해 6월 봉오동 전투에서 패한 일본군이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만주로 출병하자 소속 독립군을 백두산으로 이동하던 중 청산리에서 일본군과의 전투가 시작됐다. 10월 21일 청산리 백운평전투를 시작으로 엿새간 이어진 청산리대첩에서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이 합동작전을 벌인 끝에 일본군 3000여명을 살상하는 대승을 거뒀다. 이 전투가 바로 우리 독립운동 역사상 최고의 업적인 ‘청산리대첩의 승전’이다.


■ 이상선 전 군수, 김복동 장군 도움 컸다
갈산면 행산리의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 터는 장군의 집안이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본래 터만 남아있던 곳으로 지난 1991년부터 성역화 사업을 본격 추진해 복원한 곳이다. 생가터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76호(1989. 12. 29)로 지정됐으며,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 광(마구간)이 따로 있고 앞면 8칸 옆면 3칸의 기와집으로 복원돼 서쪽을 향하고 있다. 생가 터에는 백야기념관과 백야사, 백야공원 등이 성역화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돼 있다. 백야사는 한식목조와가로 24.37평의 규모이며 재실과 내삼문, 외삼문으로 구성된 사당이다. 백야공원에는 장군의 유년시절부터 독립군 활동을 묘사한 동상과 항일 독립운동 업적을 기리기 위한 ‘김좌진장군비’가 세워져 있다.

백야기념관은 2개의 전시실로 나뉘는데 제1전시실에는 백야 김좌진 장군의 탄생부터 만주 망명까지의 과정과 장군의 집안, 호명학교 설립을 통한 애국계몽운동, 경술국치 이후 독립운동내용과 무장독립전쟁 준비과정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2전시실에는 백야 김좌진 장군 최고의 업적인 청산리대첩에 대한 내용을 전시한 곳으로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간의 전투과정, 독립군과 일본군의 전술과 무기편성 등이 전시돼 있다.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 터 복원은 지난 1991년 첫 홍성출신의 이상선 군수(제31대 홍성군수)가 부임하면서 본격화 됐다. 이상선 군수는 부임과 함께 홍주의사총 성역화를 비롯해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복원, 만해 한용운 선사 생가지 복원사업을 군정의 제1목표로 설정해 추진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이상선 전 군수는 “처음으로 홍성출신인 내가 홍성군수로 부임하면서 생각한 것이 충절열사의 고장이라고 앞세우는 홍성의 역사인물들의 생가지를 살펴봤는데, 생가 터에는 비석만 달랑 서 있을 뿐 황량감만 들었다”며 “우선 홍성출신의 역사인물에 대한 생가지 복원공사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군정의 제1목표로 복원사업을 추진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전 군수는 성역화를 군정목표로 설정하고 우선 예산확보에 나서 “제일 먼저 청와대를 찾아올라갔다”고 설명하면서 “당시 노태우 정부시절이었는데, 김옥숙 여사가 안동김씨 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김복동 장군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옥숙 여사의 오빠인 김복동 장군을 통해 같은 안동김씨인 ‘백야 김좌진 장군의 생가 터를 복원해야지, 비석만 달랑 서있는 황량함을 민망해서 볼 수가 없다’고 건의했는데, 이를 김옥숙 여사를 통해 노태우 대통령에게 보고돼 예산이 승인됐을 땐 정말 깜짝 놀랐다”며 “당시로써는 상당한 금액인 40여억 원을 요구했는데 그 이상의 금액이 승인돼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 복원을 비롯해 홍주의사총, 만해 한용운 생가지 복원사업에 큰 도움이 됐었다”고 밝혔다.

이상선 전 군수는 “관선 홍성군수 두 번, 민선 홍성군수 한 번을 지냈는데 재임 기간인 1998~ 2001년까지 백야 김좌진 장군 사당(백야사)을 비롯해 재실, 주차장 등의 조성을 대부분 완료했으며, 홍주의사총 성역화와 만해 한용운 선사 생가지 성역화 사업 등을 모두 마친 것이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며 “김좌진 장군 생가지 복원사업에 김복동(당시 전두환·노태우 대통령과 육사 동기이자 노대통령 처남)장군이 정말로 도움을 많이 줘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라고 회고했다.

고향인 갈산과 홍성에서는 매년 10월에 백야 김좌진 장군 청산리전투 전승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청산리대첩 100주년의 해로 ‘백야 김좌진 장군 나라사랑 선양의 해’로 선포하고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오는 10월 24~25일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난 갈산 생가지와 홍주읍성 일원에서 기념행사와 음악회 등이 열릴 예정이다.

출처 : 홍주일보(http://www.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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