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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충청남도 대표 사적, 공주 공산성과 서산 해미읍성

2020.06.08(월) 16:43:28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성곽은 거주 주체, 지형, 축성 재료 등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거주 주체에 따라서 궁성(왕성)·도성·행성·읍성으로 나뉜다. 지형에 따라서는 산성(포곡식 산성, 테뫼식 산성, 복합식 산성)·평지성·평산성으로 구분짓고 있다. 축성 재료에 따라서는 목책성·토성·석성·토석혼축성·전축성으로 나누어진다.
 
충남도에는 이와 같은 성곽에 대해 비교·대조하기 좋은 곳이 있었으니 사적 제12호인 공주공산성과 사적 제116호인 서산 해미읍성이다. 오늘은 공주시와 서산시에 위치한 이 두 문화재의 공교함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왕성 '공주 공산성'과 읍성 '서산 해미읍성'
 
충청남도 대표 사적, 공주 공산성과 서산 해미읍성 1
▲공주 공산성의 공산정에서 바라본 풍경
 
사적 제12호인 공주 공산성은 공주시 산성동 금강변의 공산에 위치해 있다. 백제시대에는 웅진성이라 불렸는데, 첫 도읍이었던 한성이 개로왕 21년(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함락되자 개로왕에 이어 즉위한 문주왕이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하고 새로이 왕성으로 삼은 곳이다. 방어에 유리한 산지를 이용하여 공산 정상에서 서쪽 봉우리까지 에워싸서 만든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 내에 왕궁을 정하고 성벽을 쌓아 도성을 정비했다고 전한다.  
 
공주공산성은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15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서산 해미읍성 서문 지성루에서 바라본 풍경
▲서산 해미읍성 서문 지성루에서 바라본 풍경
 
서산 해미읍성은 1960년에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읍성의 표본으로 삼아 사적 제116호로 지정한 곳이다. 고려 말부터 해안 지방에 빈번히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주는 왜구를 막기 위해 조선 태종 17년(1417)부터 세종 3년(1421년)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을 해미에 옮기고자 축성한 곳이다. 적의 동태 파악에 유리한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한 성으로 효종 3년(1652)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설되기 전까지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했으며,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간 이후에는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으로 옮겨왔으며, 1914년까지 호서좌영으로서 내포 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던 곳이다. 
 
2. 토성이었던 '공주 공산성'과 석성인 '서산 해미읍성' 
 
공주 공산성 남문 진남루
▲공주 공산성 남문 '진남루'
 
공주 공산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진남루는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관문으로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토성으로 쌓은 것을 조선시대 석성으로 다시 쌓았으며 동쪽에 백제 토성지(土城址)가 남아 있다.
 
성문의 유형은 홍예식· 평거식 · 개거식· 현문식 성문이 있는데, 주 출입문이 남문은 아치형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문의 유형은 홍예식·평거식·개거식·현문식 성문이 있는데, 주 출입문인 남문은 아치형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주 각자
▲공주 각자
 
해미읍성은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으로 쌓았는데, 성 문루 중 유일하게 본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진남문의 동쪽 하단 3~5번째 돌에는 축성에 동원된 지역 이름이 새겨져 있다. 공사 시점 구간과 끝 지점의 지역명을 통해 충청병마절도사영인 해미읍성을 축조하는 데 공주목을 중심으로 청주목, 충주목 등 충청도 사람들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어 기록 자료로서의 가치도 높다고 전해진다.
 
3. 관아
 
충청감영에는 전(前)·좌(左)·중(中)·우(右)·후(後) 오영이 있으며, 감사 직속으로 중군(中軍)이 있다. 오영은 홍주(전영)·해미(좌영)·청주(중영)·공주(우영)·충주(후영)이다.
 
충청감영 복원지_ 포정사 문루
▲충청감영 복원지_ 포정사 문루 
 
충청감영 복원지_선화당(감영):선화당은 본래 감영이 있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자리했으나, 1932년에 충남도청이 이전하면서 본래의 기능은 상실했다. 1937년 현재의 '충남역사박물관' 부지 내로 옮겨져 박물관의 전시실로 사용되다가 199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워졌다.
▲충청감영 복원지_선화당(감영)
 
선화당은 본래 감영이 있던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1932년에 충남도청이 이전하면서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 1937년 현재의 '충남역사박물관' 부지 내에 옮겨져 박물관의 전시실로 사용되던 것을 199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충청감영 복원지_동헌
▲충청감영 복원지_동헌
 
충청감영은 조선 초에 충주에 설치되었으나, 선조 35년(1602) 충청도 관찰사 유근(柳根)의 건의로 공주 공산성으로 이전되었다. 1653년 관찰사 강백년이 봉황산 아래에 감영을 이전하면서 현재의 국립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자리 일대에 자리잡게 되었으나, 1932년 대전으로 도청이 이전된 후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철거되었다. 국립공주박물관과 공주한옥마을 사이에 자리잡은 충청감영 복원지에는 선화당, 포정사 문루, 동헌 등의 건물이 이전되어 복원된 상태이다.
 
공주시는 2018년 12월에 국립공주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정문에 포정사 문루를 복원한 바 있다.
 
충청남도 대표 사적, 공주 공산성과 서산 해미읍성 2
 
동헌:
▲동헌,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겸영장의 집무실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 현감겸영장 집무실로 관할 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이 행해지던 건물이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군·현의 병무행정과 토포사(討捕使)를 겸한 지위였다고 한다.
 
서산 해미읍성 안에는 동헌과 문루가 자리하고 있다. 동헌은 중앙에서 파견된 지방관이 집무를 보거나 생활을 하던 공간을 통칭하여 말하는 것으로 부속 건물로는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 건물 '내아(內衙)'와 책실, 고자실(庫子室)이 있다. 동헌 문루에는 호서좌영(湖西左營)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4. 객사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 지방 관아의 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의 사신들이 묵어가던 일종의 귀빈 숙소였으며, 객관(客館)이라 불리기도 한다.
 
충청남도 대표 사적, 공주 공산성과 서산 해미읍성 3
 
공주중동초등학교 교문 오른편에는 공주 객사지를 알리는 안내석이 세워져 있다.
▲공주중동초등학교 교문 오른편에는 공주 객사지를 알리는 안내석이 세워져 있다
 
공주시의 지원으로 공주문화원에서 발행한 「공주문화」 340호에서 공주문화원 부설 향토문화연구소의 장길수 위원은 공주객사인 웅주지관(熊州之館)의 변천사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자료에 따르면 공주객사는 1898년에 충남도 최초로 개설된 공주사립소학교에 이어 공주공립보통학교(현 공주중동초등학교)로 사용되다가 학생이 늘면서 교실이 부족하자 1924년에 객사 건물을 헐고 새로 교실을 지었다고 한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가 졸업한 공주중동초등학교 정문에는 옛 공주객사터를 알리는 작은 안내석이 세워져 있다.
 
해미읍성 객사
▲해미읍성 객사
 
해미읍성 객사는 건물의 중앙 정청에 궐(闕) 자가 새겨진 위패를 모시고 삭망(매월 초하루, 보름)에 관아의 대소 관원들이 국왕에 대한 예를 올렸으며, 양편 익실(翼室)은 조정이나 상부에서 파견된 관원 및 귀빈들의 숙소로도 사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해미읍성 객사는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1999년 7월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고 전한다.
 
5. 옥사
 
공주 감영 옥사는 현 공주보건소(옛 공주군청) 맞???편????? 있었???고 전한다.
▲공주감영 옥사는 현 공주보건소(옛 공주군청) 맞은편에 있었다고 한다
 
해미읍성 옥사
▲ 해미읍성 옥사
 
해미읍성 안에는 1790년~1880년대에 천주교인들을 투옥하고 문초하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 있던 옥사를 발굴 작업을 거쳐 복원·재현하였다고 한다. 공주감영 옥사는 공주보건소(옛 공주군청)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다고 하며 직진하면 옛 충청감영이 있던 국립공주대학교부설고등학교가 오른쪽에 자리해 있다.
 
충청남도의 대표 사적 제12호인 공주 공산성과 사적 제116호인 서산 해미읍성을 살피다 보니 우선적으로 왕성과 읍성, 토성과 석성, 산성과 평지성이라는 차이점이 보였다. 그러나 충청감영이 있었다는 행정적, 군사적 공통점을 확장하여 살피니 여행지에서 놓쳤던 흥미로운 사실에 눈을 뜨게 되어 뿌듯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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