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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업으로 민족의식심다

청산리전투 100주년, 김좌진 장군서거 90주년 기획 ③ 호명학교 설립에 참여하다

2020.05.15(금) 11:20:41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일원 옛 호명학교 터

▲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일원 옛 호명학교 터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설립
항일투쟁에도 교육사업 열정
국권회복 위해 신교육 보급
법률과 설치 교육운동 주도

 
김좌진은 집안의 노비를 해방한 후 홍성의 호명학교(湖明學校) 설립에 참여했다. 한말계몽운동가들은 국권상실의 원인을 실력부족으로여기고 자강(自强)을 이루고자 했으며 지역의 명망가들은 사립학교를 설립해 교육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은 홍성에도 밀려들기 시작했다. 홍성은 홍주의병이 말해주듯이 제국주의 침략과 개화정책에 반대했던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그러나 신교육 보급을 통해 부국강병을 이룩해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은 사립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다. 호명학교가 설립되는 시기를 전후해 홍성에서 광명(光明)ㆍ덕명(德明)ㆍ홍명(洪明)ㆍ화명(華明)학교 등의 사립학교들이 설립되는 것도 이러한 인식전환의 결과였다.

호명학교는 1906~1907년경 홍성지역 안동김씨 문중에서 설립한 문중학교였다. 안동김씨 문중은 실력을 양성해 자강을 이룩해야만 국권회복이 가능하다고 여겼고 신학문을 보급하기 위해 호명학교를 설립했다. 호명은 호서지역을 개명(開明)한다는 뜻이며 호명학교는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에 설립되었다. 교지는 865평이었으며 교사는 62평, 학교실습지는 219평이었다. 학생수는 1908년에 100여명에 달했고 중등과와 소학과를 나누어 교육했다. 호명학교 학생들은 위국가를 불렀다고 한다. 위국가는 학문에정진하여 세계맹주가 되어보자는 내용으로 민족정신과 애국의식을 고취하는것이었다. 호명학교는 법률과를 설치하며 홍성지역 교육운동을 주도했으며 1917년 갈산공립보통학교로 전환되었다.

김좌진은 자강을 통한 홍성의 변화를 꿈꾸기 시작했고 호명학교 설립에 참여했다.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홍성지역 청소년들에게 신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여겼기때문이다. 김좌진은 1920년대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벌일 때도 교육사업에 대한 열정은 남달랐다. 그는 만주에서 신민부와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해 항일투쟁을 벌이면서도 50여 개의 학교를 설립해 한인 자제들을 교육했다. 교육사업은한인 자제들에게 항일의식과 민족의식을 심어 줄 수 있는 가장효과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김좌진은 독립운동가며 교육자였던 것이다. 교육운동가 김좌진의 출발은 호명학교 설립이었던것이다.
/이성우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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