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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안흥진성의 국가사적 가치

생생현장리포트 - 김동이태안신문 기자

2020.04.27(월) 11:28:5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안흥진성의 국가사적 가치 1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는 태안군은 과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해상뱃길의 중요거점인 동시에 중국과 인접해 있어 수많은 세곡선과 상선들이 오갔다.

하지만 물살이 세조운선의 무덤이라고 불렸던 안흥량에 붙잡혀 수장되는 아픔을 겪기도 한 곳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 안흥량으로 인해 태안반도 앞 바다는 현재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을 건져내며 ‘바닷 속 경주’라는 수식어도 얻게 됐다.

기존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이 군의 유일한 국보였지만 바닷 속 경주에서 건져 올린 청자 퇴화문두꺼비모양 벼루와 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 등3점의 문화재가 잇따라 보물(제1782호~1784호)로 지정되며 군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최근 태안군이 충남기념물의 국가사적 승격을 추진하고 있어 지정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전국의 통제영·방어영·수영·수군진성 중에서 유일하게 4개의 성문과 성벽이 남아 있는 수군진성의원형 ‘안흥진성’이 그것. 충청도에서 유일하게 축성된 수군방어영(防禦營)인안흥진성은 1976년 1월 8일 충남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됐다.

안흥진성은 조선시대 조운로의 주요 거점을 담당하는 장소로, 국가사적으로지정될 경우 태안군으로서는 관광분야에 또 하나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태안팔경 중 제2경이기도 한 안흥성은 조선조 제17대 효종 6년(1655년)에 축성된 둘레 1568미터, 높이 3.5미터에 이르는 석성(石城)이다. 이후 240년간 내려오다 조선조의 고종 31년(1894년) 동학혁명 때 성내의 건물이 모두 소실됐으며, 성곽은 자연히 폐성되고 말았다고 기록이 전해 내려온다.

안흥진성이 역사적·학술적 가치를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문헌기록에 축성배경·축성결정·완공시기가 명확히 남아있고, 성벽에 축성참여지역·석공·초축시기가 새겨져 축성과정의참여주체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국의 성문·성벽 및 여장 원형·곡성 등이 잘 남아 있어 진성(鎭城·수군들이 전투를 위해 해안 벽에 쌓는 성곽)의 원형으로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높다.

또지난 4월 태안군을 방문해 안흥진성을 찾은 정재숙 문화재청장도 그 가치를 인정했다.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이 절실하다는 가세로 태안군수의 건의에 정청장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점도 희망적인 요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태안군은이달부터 충남역사문화연구원과 함께 안흥성문화재 발굴조사에 나선다. 학술연구용역과 학술세미나도 개최하는 등 학술적 성과 확보에도나선다는 계획이다. 안흥진성의 국가지정 승격을 바라는태안군민의 기대감은 한층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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