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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동성왕은 이곳에 올라 무슨 고민을 했을까?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의 ‘성흥산성(城興山城)’에 오르다.

2019.11.01(금) 22:34:55 | 황토 (이메일주소:enikesa@hanmail.net
               	enikesa@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동성왕은 이곳에 올라 무슨 고민을 했을까? 1
 
늦가을 햇살이 빠르게 사라진다. 시월이 저물기 전, 모임 회원들과 부여의 ‘성흥산성’을 올랐다. 백제 당시에는 ‘가림성’이라고 불렀다는데 산성 정상에 오르니 ‘加林城’이라고 한자가 새겨진 비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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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왕은 이곳에 올라 무슨 고민을 했을까? 4
  
성흥산성을 오르는 계단길은 가팔랐다. 산성 정상에 있는 느티나무는 일명 ‘사랑나무’라고 부른다. 수령 400여 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장소로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탔다. 평일이었지만 가족들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가림성 아래로 보이는 마을
▲가림성 아래로 보이는 마을
 
동성왕과 관련하여 고대사 자료를 참고하자면,

정치의 중심지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옮겨진 후, 동성왕은 금강유역에 기반을 둔 유력세력들을 주목했다. 왕권을 회복하고 정국을 안정시키며 천도초기의 정치적 불안정을 극복했지만 신진세력이 차츰 커지면서 왕권압력요소로 작용했다. 동성왕은 견제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그런 조처 중의 하나가 공주지역을 기반으로 한 위사좌평 백가를 ‘가림성’ 성주로 강제로 내보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백가를 위시한 신진세력의 불만을 초래했다. 동성왕이 사비서원에서 사냥하는 틈을 타 백가세력은 왕을 암살했다.

백가세력에 의한 동성왕의 암살은 전제적 왕권강화에 대한 귀족들의 반발이 상당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동성왕대에 추구된 일련의 정책은 한성 함락 이후 축소된 백제 왕실의 지배기반을 확대시켜 주었고, 나아가 무령왕(武寧王)·성왕(聖王)대의 정치적 안정과 문화발전의 토대를 놓아주게 되었다.

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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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흥산성(城興山城) 안내글은 아래와 같다.

“사비천도 이전인 서기 501년에 쌓은 백제시대의 산성이다. 백제 당시에는 가림성(加林城)이라고 불렀다. 해발 250m의 성흥산 정상부에 돌로 쌓은 석성과 그 아래쪽에 흙과 돌로 쌓은 토성이 있다. 석성의 둘레는 1,350m 높이4m 가량 되는데, 성 내부에는 우물터, 건물터 등이 남아 있으며, 남문과 동문과 서문 3개의 문터가 확인되었다. 1996년 석성의 일부를 조사하였다. 현재까지 백제 성곽 가운데 쌓은 시기가 가장 확실한 산성이므로 백제시대의 성곽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이 되었다.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므로 18세기 중엽까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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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근처의 우물터에 손잡이가 있는 플라스틱 바가지가 걸렸다. 우물물은 마실 정도로 깨끗하지 않았다. 가림성 비석 아래로 보이는 마을은 산울타리 안에 아름드리 모였다. 당시에 쌓은 석성과 토성은 역사를 품고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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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적을 한눈에 관찰할 수 있는 가림성. 이곳은 사비성 외곽을 방어하는 거점이었다. 집권 말기 측근정치와 자연재해, 그리고 민심 이반 등을 겪으며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동성왕의 정치적 한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무령왕과 성왕대에 백제의 중흥을 이끄는 기반이 되었다.
  
느티나무(사랑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논산, 강경, 익산, 서천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알 수 있다. 날씨가 맑으면 익산의 용화산과 장항의 제련소까지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살짝 흐린 날씨에 그것까지 기대하는 건 욕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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