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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조선의 독립만세를 부릅세다”

충남의 여성독립운동가 - ①민옥금·한이순·황금순

2019.02.26(화) 14:36:5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전문

▲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전문



3월20일 독립선언문 뿌리며
천안 직산만세운동 주도
장날 상복 입고 만세시위
순식간에 700명 운집
헌병대 체포돼 투옥
지역 독립만세운동 불씨로


1919년 3월 20일에 일어난 천안 직산읍의 만세운동은 여성들에 의해 주도된 대표적인 독립만세운동이다. 직산읍 양대리에서는 3월 20일과 3월 28일, 두 차례에 걸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었는데 3월 20일은 광명여학교 교사 임영신과 학생 민옥금(閔玉錦, 민원숙으로 개명), 한이순(후일 한도숙으로 개명), 황금순(후일 황현숙으로 개명)이 주도했다.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독립선언서 배포를 맡았던 함태영이 광명여학교의 임영신에게도 독립선언서를 보내왔다. 임영신은 1919년 2월 28일에 학교를 찾아온 함태영으로부터 전해 받은 선언서 1장으로 수백 매를 등사한다. 다음 날 아침 세 여학생을 불러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부탁했다.

임영신 선생의 뜻을 받들어 민옥금·한이순·황금순 3명의 여학생들은 3월 20일 입장 장날을 기해 독립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한다. 먼저 하급생들을 포섭하고 교회 부인들과 광부의 아내들에게 도 3·1운동의 소식을 전달했다. 수업을 마치면 골방에 숨어서 4주간 밤마다 태극기를 그리며 만세시위를 준비했다.

민옥금은 당시 17세, 한이순과 황금순은 18세였다. 3명의 여학생들은 입장 장날 아침 모두 상복으로 갈아 입고 흰 댕기를 드리고 태극기를 들고서 집을 나섰다. 망국을 서러워하고 독립을 갈구하는 뜻으로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여학생들은 천 조각에“부릅세다. 조선 독립만세를, 시간은 정오 8시, 한 분도 빠짐없이 나오세요”라고 써서 광산 곳곳에 붙이고 이장에게도 전달했다. 또 학생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입장 장터를 향해 행진하며 독립만세를 연호했다.

당시 광명학교 교사 강기형을 비롯한 광부 안시봉, 김병열, 김채준, 조쌍동 등은 학생들의 만세소리에 감흥해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했고 마을 주민들이 합세하여 순식간에 시위자는 700여 명이 넘었다.

당시 민옥금은 헌병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고 쓰려졌다가 일본 헌병에 체포되었다. 3월 23일에 천안으로 압송되어 천안헌병분대 유치장에서 사흘 동안 신문을 받았다. 이후 민옥금, 한이순, 황금순 등 세 여학생들은 포승에 묶여 성환역으로 나와 기차를 타고 공주 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됐다. 이어 1919년 4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개월을 언도받고 공주감옥에 투옥됐고 1920년 2월 7일에 가출옥했다.

여학생들의 3월 20일 만세운동은 광부들의 3월 28일 독립만세운동과 3월 29일에 일어난 군중들의 만세시위운동을 촉발시키는 등 천안 지역 독립만세운동의 불씨가 됐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발간 <충남 여성문화사 총서> 참조
/김혜동 khd1226@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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