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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느림’으로 빚은 약주... 품격이 다른 ‘술맛’

충남의 술 TOP10 ⑧이상헌 약주

2018.11.05(월) 23:17:1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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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대표가 본인이 직접 띄운 누룩과 갓 거른 약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 이상헌 대표가 본인이 직접 띄운 누룩과 갓 거른 약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맑은 담황색의 ‘이상헌약주’

▲ 맑은 담황색의 ‘이상헌약주’


약주 제조 과정. 항아리에 발효시켜 용수로 거르는데 전 과정을 기계의 도움 없이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한다.

▲ 약주 제조 과정. 항아리에 발효시켜 용수로 거르는데 전 과정을 기계의 도움 없이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한다.


 

 

기계쓰지 않고 ‘옹기’로 발효

전통방식 고수 본연의 향기 남아

 

직접 누룩제조는 이 대표의 철학

52% 소주로 고급술 시장 도전”

 

 

지역술에는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근에는 주류 다양화의 바람에 힘입어 다양한 지역술이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충남도는 최근 맛좋은 지역술 10개를 선정해 홍보마케팅 등을 지원하고 있다. 전문가와 일반 도민들이 엄선한 충남 술 10선을 차례차례 만나보자. <편집자 주>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흔히 집집마다 술을 빚어왔다. 제사와 잔치가 끊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집에서 술을 빚고 마시는 행위를 빗대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이라고 표현했다. ‘천지자연 신명께 제를 올리고 손님을 귀하게 대접한다’는 뜻이다.

 

조상을 모시고 손님을 가장 귀하게 대접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았던 우리의 전통주. 마시고 먹는 ‘음식(飮食)’의 기본이자 식문화의 정수로 손꼽혀오던 우리의 술은 일제 침략 전까지 수천 수만가지에 달했다.

 

하지만 맛과 향이 다 달랐던 그 다양했던 술들은 일제 강점기를 기해 사라지기 시작했다. 전통주의 말살을 의미하는 주세령이 강제 집행됐기 때문이다. 각 지방과 집안마다 만들던 술은 밀주로 취급받으며 단속의 대상이 됐고, 모든 주류가 약주, 탁주, 소주로 획일화규격화됐다.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관련 법이 개정되며 우리 술을 빚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명맥이 끊긴 수많은 가양주들을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경주교동법주, 문배주, 두견주, 소곡주, 연엽주, 진도 홍주 등 제법 명맥을 잇고 있는 전통주들이 30여 가지에 그치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들 업체들도 기성 주류업계의 높은 문턱과 소비자들의 외면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곳이 대다수다. 

 

하지만 우리 술 전성시대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이 있어 전통주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 양질의 재료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완벽한 술맛을 얻어내려는 연구자들이 곳곳에서 모임을 꾸리거나 연구소, 박물관 등을 개설해 스스로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최상의 술맛을 되찾기 위한 노력으로 우리술 부흥의 중심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산에 위치한 ‘이가수불(李家수불:술의 옛말)’의 이상헌(63) 대표는 우리술 복원에 매진하고 있는 연구자 중 한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이상헌약주’는 전문가와 일반인들 사이에서 고루 높은 점수를 받으며 충남의술 Top10에 선정됐다.

 

이 대표가 이상헌약주를 시장에 낸 것은 지난 2013, 불과 5년 전이다. 하지만 묵직한 술맛은 순간의 노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제 고향이 선비의 고장, 안동이에요. 예전부터 양반집에서는 남자들이 술을 빚는 게 전통이었는데 저도 어른들에게서 배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술을 빚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동안에도 호기심이 이어졌던 것 같아요. 양조학 공부를 틈틈이 하면서 전국의 술 명인들을 다 만나고 다녔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래서 저만의 술을 빚자고 결심했습니다.

 

이 대표는 전통술에 대한 갈증을 자신만의 정성과 노력으로 메꿨다. 최상의 재료를 사용해 전통의 방식 그대로 술을 빚는 것. 언뜻 쉬워 보이지만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대다수 양조장들이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값이 저렴하거나 기성 재료를 사용하고, 품을 줄이기 위해 기계를 도입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이 대표는 술 빚는 전 과정을 기계의 도움 없이 전통 방식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요즘은 가정집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옹기로 발효 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발효가 마무리된 술을 거르는 데도 용수(싸리나 대오리로 만든 둥글고 긴 통)를 사용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도 많이 들지만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결국은 술맛이다.

 

“다른 곳처럼 스테인레스통에서 발효를 하면 훨씬 편한데 왜 안하겠어요. 술맛이 확 달라져요. 압착기가 아닌 용수로 술을 떠내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그 맛의 차이를 아는데 어떻게 다른 방식을 택할 수 있겠어요.

 

술의 주 재료인 쌀은 아산맑은쌀의 삼광품종, 물은 예산 추사고택의 샘물만을 사용한다. 황국이 주종을 이루는 누룩은 심지어 직접 만든다. 현재 국내 양조장 중 직접 누룩을 빚어 사용하는 곳은 이가수불이 유일하다 하다. 완벽을 기하는 집요한 장인정신이다.

 

이상헌약주는 주재료로 멥살과 찹쌀, 전통누룩, 샘물로만 빚기 때문에 순곡 청주(純穀 淸酒)에 속한다. 먼저 멥쌀로 죽을 쑨 뒤, 누룩을 섞어 만든 술밑을 발효시켜 밑술을 만들고 여기에 다시 찹쌀로 고두밥을 지어 보태 다시 한번 더 발효시키면 알코올 도수 18%의 비교적 높은 알코올 함량을 자랑하는 약주가 완성된다.

 

옅은 담황빛깔의 술은 달큰하지만 과하지 않고 구수하면서 쌉싸름한 향이 일품이다. 약간의 점성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으로 목넘김이 좋다. 언뜻 화이트와인을 마시는 듯도 하지만 산미는 덜한 편으로 마실수록 감칠맛이 느껴진다. 잣과 같은 고소한 견과류를 곁들이면 담백한 맛과 함께 약주 본연의 향기를 더욱 생생히 즐길 수 있다.

 

약주와 함께 이가수불의 시그니처 제품인 ‘이상헌탁주’도 인상적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알코올 도수 19% 탁주로 걸죽한 질감에 드라이하면서도 강렬한 맛이 일품이다.

 

굳이 흠을 잡자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느긋한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데다 이 대표 혼자 작업하기 때문에 여느 공장에서처럼 생산량이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 술의 기본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술을 빚고 있는 이 대표는 우리 술의 대중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전국의 농업기술센터나 우리술연구모임에서 강의 요청이 오면 열일을 마다하고 달려간다. 술을 배우기 위해 전국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들도 언제가 반갑게 맞는다. 가정집 일부를 개조해 공방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렇다 할 간판도 없지만, 그래서 이가수불은 늘 문전성시다.

 

이 대표가 교육에 열과 성을 다 하는 이유는 우리 술의 가치를 알고 배우러 오는 이들이 늘어나 술에 대한 관점이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우리 술에 대한 기본 관점을 다시 정립해야 해요. 좋은 술을 만들고 가르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전국 곳곳으로 교육을 다니는 이유이기도 해요. 우리 지역만 해도 아산, 천안에 우리술연구회들이 조직돼 있어요. 그런 모임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응원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술을 복원하고 부흥시키는 주역이 될 거에요.

 

이 대표는 올 12, 알코올 52%의 소주 출시로 고급술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다. 약주를 증류한 것인데 풍부한 아로마가 가히 국보급이다. 500ml 한 병에 20만원으로 다소 높은 가격이지만 벌써부터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만드는 이의 올바른 철학과 지식, 최상의 재료, 완벽한 전통방식의 재현, 술의 조화로운 맛 등 문화로써 술의 종합적인 가치를 높이 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 시장의 미래가 어둡지 만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김혜동 khd1226@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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