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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벼는 평등하게 자란다

칼럼 -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2017.09.08(금) 17:37:5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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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는 평등하게 자란다 1


농업과 음식은 그 바탕이 나눔에서 시작
생명체와 자원이 함께 공존하는 사회되길


지난 봄 극심한 가뭄으로 모내기조차 하지 못한 논들이 많았다. 모내기를 해도 비가 오지 않아 말라죽어 다시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 모내기를 하는 논들도 있었다. 우리 연구원 옆에도 천수답 비슷한 논이 몇 뙈기 있는데 올 봄 모내기를 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 물이 차는 대로 한 뼘 한 뼘 모내기를 하더니 6월말 비가 온 후 모내기를 마쳤다. 그래도 한 뙈기는 모가 심기지 않아 올 봄 최악의 가뭄이 어떠했는지 알려주는 듯했다.

그런데 가뭄이 끝나자 이번에는 장마와 폭우로 여러 지역에서 피해를 보았다. 우리 지역에서는 천안지역의 피해가 컸다. 마을로 휩쓸려온 수마에 가옥이 사라져버렸고 농작물은 물에 잠겼다. 오이와 멜론이 유명한 천안지역 시설하우스가 물에 잠겨 농가들은 많은 피해를 보았다. 21세기 첨단을 살아가는 요즘, 4차산업혁명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하지만 하늘을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없는 게 또한 오늘날 우리 농업의 현실이다.

최악의 가뭄, 그리고 갑작스레 찾아온 물난리도 언제였냐는 듯 지금 들판에는 벼들이 파랗게 자라고 있다. 가뭄과 홍수를 거치면서 어떻게 저 여린 벼들이 자랄까 걱정이 되었지만 벌써 들판은 녹색으로 물들어버렸다.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요즘, 지금 들판에 나가 벼들을 자세히 보면 벼꽃을 볼 수 있다. 벼도 무슨 꽃을 피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얀 균사체가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일 듯 말듯 벼들이 선후다툼 없이 함께 꽃을 피워 열매를 준비하고 있다. 한 여름 무더위를 이겨내고 피는 무궁화의 강인함이 우리민족의 상징이 되었듯이 우리 민족의 주식인 쌀 또한 한여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맺어 누천년 동안 우리의 양식이 되어주었다. 참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올여름, 가뜩이나 무더운 날씨에 우리를 더 무덥게 한 뉴스도 많았다. 호식이치킨, BBQ, 하림, 미스터피자, 총각네 야채가게 등등이 그 주역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먹는 것과 관련한 기업이라는 점, 체인점 형식으로 운영된다는 점, 그리고 모두 창업자의 ‘갑질’과 부정행위가 도를 넘었다는 점 등이다. ‘예로부터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천벌 받는다.’고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 부모님들이 말씀하셨는데 이들 기업의 갑질과 부정행위 행태를 보면 할 말을 잊게 만든다.

‘백성은 음식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고 했는데 이들 기업에게 음식은 오직 돈벌이와 창업주의 위신을 세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 의심이 든다. 우리의 고유한 음식문화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값싼 외국 농산물을 수입해 혀끝을 자극하는 단맛으로 음식을 만들어 이윤 추구만을 앞세우는 오늘날의 음식풍토를 이제는 한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음식 관련 기업이 왜 유독 ‘갑질’과 많이 연관되는지는 사회문화적으로 연구될 필요가 있지만 그 기원을 따지면 아마 일제강점기에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탈한 후 손쉬우면서도 보편적인 방법으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음식에 세금을 물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술과 담배였다. 그 중에서도 술의 경우를 보면, 일제가 얼마나 철저히 우리의 음식 문화를 파괴하고 수탈했는지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고을마다 집집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술을 담가먹었다. 그런데 일제는 읍면 단위에 하나의 양조장만을 두고 나머지는 다 금지시켰다.

그래서 그전까지 마을에서 혹은 집에서 담가먹던 지역의 전통술은 사라지고 양조장에서 만든 술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다. 어디 술뿐이겠는가? 담배, 인삼 등 돈이 되는 품목은 모두 일제가 직접 관장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종속관계가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우리 생활의 뿌리 깊은 적폐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이러한 정부 주도의 독점체계는 어느 정도 완해 되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서의 종속관계와 독과점은 점점 강화되어 왔다. 특히, 농업과 음식분야는 수직계열화, 브랜드화에 의한 종속관계, 심하게는 착취구조가 고착화되어 갔다. 일반 농민과 서민이 자본주의 시장체계 진입이 어려운 점을 이용해 이러한 농업과 음식 관련 기업들은 농민과 서민 자영업자를 협력의 동반자가 아니라 이윤추구의 도구로 이용하는 체계를 고착화했다.

농업과 음식은 기본적으로 나눔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누천년 동안 재배해온 벼(禾)는 근본적으로 화(和)의 토대가 되어왔다. 서구에서 수입한 밀가루와 얄팍한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가 아닌 요술을 부려 음식을 파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무더위에도 말없이 꽃을 피우고 묵묵히 열매를 맺어가는 우리의 주식인 벼의 의미를 되새겨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백년만년 갈 것 같던 원전을 점차 폐기하는 신정부의 탈핵 정책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원자력이라는 핵물질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착취와 독과점의 중심(핵)을 해체해 모든 생명체와 자원이 다양하게 함께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일 것이다. 가뭄과 홍수 등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평등하게 자라는 저 푸른 들판의 벼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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