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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천명 (45) 자리다툼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7.06.08(목) 10:24:4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천명 (45) 자리다툼 1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시오. 얻기는 무엇을 얻는단 말이오. 이미 그대들이 요직이란 요직은 모두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소?”
취사(取斯) 김취로가 나서자 봉암(鳳巖) 채지홍이 맞대응한 것이다. 영조는 지긋이 두 진영의 논쟁을 지켜보았다.

‘그래, 그렇게들 놀아라. 너희들 지긋지긋한 노론의 무리들을 한꺼번에 물리칠 좋은 기회다. 이제 남인과 강화의 야인들을 불러들여 힘의 균형을 맞출 것이다.’
영조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흐뭇한 표정으로 논쟁을 지켜보았다.

“봉암, 말 한번 잘했소이다. 영상부터 시작해 사헌부 대사헌, 홍문관 대제학, 도승지까지 그야말로 요직이란 요직은 그대들이 모두 차지했지 않소. 우리야 가진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이오?”
여호 박필주가 다시 나서 이제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영조에 대한 불만이기도 했다.

“허, 이제 관직타령을 하시오. 그것이 그대들의 본심이었소?”
운평 송능상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박필주를 바라보았다.

“요직이라 말했지만 사실 살펴보면 요직이야 말로 그대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지 않소. 이조 전랑자리를 비롯해 옥당(玉堂)의 부제학(副提學)과 응교(應敎), 교리(校理), 수찬(修撰) 거기에 삼사(三司)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집의(執義), 장령(掌令), 감찰(監察)은 물론 사간(司諫), 헌납(獻納), 정언(正言)까지, 모두 그대들 사람이오. 우리는 그야말로 빈껍데기만 갖고 있소이다.”
병계 윤봉구가 상기된 얼굴로 반박을 해댔다.

이제 두 진영은 노골적으로 서로에게 발톱을 드러냈다. 그동안 치열한 논쟁을 펼쳤던 인물성동이론을 핑계로 자리다툼에 들어갔던 것이다.

영조는 느긋이 두 진영을 바라보았다. 형조판서 홍치중의 말이 떠올랐다.

“전하, 어쩌면 낙하파를 모함하기 위한 호서인들의 모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조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홍치중의 말에 수긍했기 때문이었다.

“말을 함부로 하지 마시오. 어찌 그리도 불손하오!”
외암 이간이 발끈해 나섰다. 그러자 운평(雲坪) 송능상이 다시 맞받았다.

“그럼 아니란 말이오?”
비아냥거림이 다분했다. 입가에는 비웃음까지 가득 베어 물고 있었다.

“그만들 하십시오. 이 무슨 추태들이십니까?”
대전을 울리는 소리에 낙하의 신료들도 호서의 신료들도 하나같이 움찔했다. 이어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소리 난 곳을 보니 현묵자(玄默子) 홍만종이 서 있었다. 보다 못한 그가 나섰던 것이다.

“대감들께서는 수암선생을 스승으로 모시는 동문이 아닙니까? 아무리 생각을 달리 한다지만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전하의 앞에서 겨우 관직타령이라니요? 사직과 백성을 위한 일을 논의해도 부족한 시간입니다.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현묵자 홍만종의 질책에 신료들은 고개를 돌렸다. 하나같이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얼마간 침묵이 흘렀다. 영조는 재미있다는 듯이 두 진영을 번갈아 보았다.

침묵을 깨고 먼저 대전에 목소리를 울린 것은 남당 한원진이었다.

“아무튼 사람의 본성이 개의 본성과 같다는 그대들의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오. 어찌 그럴 수 있겠소?”
지금까지의 관직타령이 부끄러웠다는 듯 남당의 목소리는 꽤나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생각은 이 조선이란 나라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오. 이 조선은 신분의 차별이 엄연한 나라이거늘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소.”
매봉(梅峯) 최징후도 거들고 나섰다. 다툼은 다시 인물성동이론으로 돌아섰다.

“우리의 생각은 만물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지 개나 소와 같이 어느 하나의 물상을 두고 이르는 것은 아니지 않소. 어찌 그리 졸렬하게 말하시오.”
한천(寒泉) 이재의 반박에 운평 송능상이 다시 반박하려 나섰다. 그러자 영조가 손을 내저으며 송능상을 물리쳤다.

“그만, 그만들 하시오. 그런 논의는 이제 신물이 나오. 모이기만 하면 인성이 어떻고 물성이 어떻고 쓸데없는 논쟁에 시간을 다 허비하고, 현묵자의 말대로 사직과 백성을 위한 일에 그렇게 열성을 보여 보도록 하시오.”
영조의 핀잔에 운평 송능상은 황송하다는 얼굴로 물러섰고 두 진영의 신료들도 동시에 허리를 굽혔다.

“미관말직인 첨정(僉正)만도 못한 대신들이 되고 싶소? 물러들 가시오. 다시는 내 앞에서 그런 논쟁을 벌이지 마시오.”
영조의 목소리는 높아져 있었다. 얼굴도 상기되어 있었다. 그제야 낙하와 호서의 신료들은 허리를 굽히고는 물러갔다.

두 진영의 신료들이 모두 대전을 나가자 영조가 눈살을 찌푸린 채 중얼거렸다.

“이쯤 했으면 저들도 눈치를 챘겠지.”
영조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음모가 서린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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