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연재소설] 천명 (22) 마리아

청효표윤명 연재소설

2016.09.03(토) 23:54:15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천명 (22) 마리아 1


천명 (22) 마리아 2

“앉으시죠.”
공소장 마리아는 판관 이행령에게 자리를 권했다. 사내들도 죽 둘러앉았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쪽 구석에 놓여있던 작은 대나무 주전자가 들썩였다. 김까지 솟구쳤다. 처음 들어서자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는데 바로 그 향기의 근원이었던 모양이다.

“목사께서 그런 제안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요?”
공소장 마리아의 물음에 판관 이행령이 답했다.

“서신에 쓰여 진 그대로요. 더도 덜도 없소.”
딱 잘라 말하는 이행령의 말에 공소장 마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제야 판관 이행령의 눈에 공소장 마리아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산 속에 은거하고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서양귀신을 믿는 무리들의 우두머리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판관 이행령은 넋을 잃은 채 공소장 마리아를 쳐다보았다.

“저들에 불리하니 우리 힘을 빌리자는 것이 아닙니까?”
공소장 마리아가 다시 묻자 그제야 판관 이행령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주저 없이 답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오. 저들의 위세가 만만치 않아 홍주목으로서도 난감한 상황이긴 하오. 관찰사에 보고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손을 벌리기에는 사정도 있고.”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끊자 철립을 쓴 사내 요셉이 끼어들었다.

“도대체 무슨 말들입니까? 우리도 알고 갑시다!”
목소리에 다분히 불만이 섞여 있었다. 그제야 공소장 마리아가 홍주목사 권자헌의 서신을 내보였다. 그리고는 서신의 내용을 설명했다. 그러자 둘러앉은 사내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함정입니다. 우리를 끌어내 일망타진하려는 계략입니다.”
눈썹까지 치켜 올린 신바오로가 입에 거품을 물고 일어섰다. 그러자 곁에 있던 사내가 신바오로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이마르티노였다.

“앉아. 흥분하지 말고.”
가라앉은 차가운 목소리였다. 그때 향기로운 차향이 코를 자극해 왔다. 솥 안의 끓는 차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일단 들어보자.”
요셉도 거들었다. 그러자 바오로는 식식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런 얕은 수작으로 우리를 농락하려 들다가는 언제 목 없는 귀신이 될지 몰라.”
바오로는 자리에 앉아서도 이행령을 노려보며 씩둑거렸다. 판관 이행령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라도 그런 의심을 할 수 있지요. 허나 사태의 급박함이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여러분이 이 제안을 거절하신다면 홍주목으로서도 어려운 일이고 여러분들도 기회를 잃는 안타까운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판관 이행령의 진지한 말에 장내가 일순 적요에 휩싸였다. 맑은 차향만이 탁자를 휘감아댔다.

“한잔 드시고 말씀 나누시지요.” 앳된 소녀가 차를 따라 주었다. 아마도 공소장 마리아의 수발을 드는 소녀인 듯 했다.

“판관께서 잠시 자리를 비워주시겠습니까? 저희들끼리 긴히 상의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르티노가 나선 것이다. 자기들끼리 허심탄회하게 상의를 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맞습니다. 저희들끼리 상의를 해 보고 결정을 하겠습니다.”
공소장 마리아도 마르티노의 의견에 동조하고 나섰다. 판관 이행령은 찻잔을 든 채 자리를 일어섰다. 코를 자극하는 맑은 차향이 머리를 식혀주었다.

“이리로 오시지요.”
문 앞에 서 있던 사내가 이행령을 밖으로 안내했다. 허리춤에 칼을 찬 곱상한 사내였다.

“이건 무슨 차요?”
판관 이행령은 문을 나서자마자 차를 홀짝거리며 물었다. 복잡하고 긴장된 순간을 벗어나고자 하는 질문이기도 했다.

“가배(커피)라고 합니다. 세자요한이신 광암(曠庵)선생께서 특별히 전해주신 서양차지요.”
“광암이라면, 이벽(李檗)을 말하는가?” “예, 그렇습니다.”
사내의 대답에 판관 이행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찻잔을 들었다. 코끝으로 전해지는 짙고도 낯선 향이 매혹적이었다. 눈 아래의 갈참나무 잎이 바람에 파르르 떨어댔다.

이행령은 공소안에서 무슨 얘기들이 오고갈지 궁금했다. 긴장까지 되었다.

“이곳 생활은 어떤가?”
이행령은 긴장감을 대화로 풀어보고자 했다.

“행복합니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하는 말에 이행령은 오히려 당황했다.
 

 

도정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연재기사]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