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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천명 (21) 서신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6.08.17(수) 21:48:09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천명 (21) 서신 1


천명 (21) 서신 2


내의 눈살이 찌푸려지며 고개가 돌아갔다. 남장을 한 계집이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뒤로 우람한 사내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공소장 김마리아인 듯 했다.

“홍주목에서 왔답니다.”
사내의 목소리에 불만이 가득했다. 자신을 얕잡아본 것에 대한 불쾌함일 것이다.

“녹봉을 드시는 나리께서 이 험한 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공소장 마리아는 남장을 했지만 아리따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맑고 큰 눈이 매우 고혹적이었다.

“홍주목사의 제안을 가지고 왔소이다.” 판관 이행령의 말에 공소장 마리아가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눈빛에 의심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당신은 누구시죠?” 공소장 마리아는 홍주목사란 말에도 관심이 없었다. 눈앞에 서있는 판관 이행령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홍주목 판관 이행령이라 하오.”
판관 이행령이라는 말에 공소장 마리아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그따위 관직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사람이 먼저 일뿐입니다.” 같잖다는 표정으로 판관 이행령을 한차례 훑어본 공소장 마리아는 다시 물었다.

“그래 용건이 무엇입니까?”
생긴 모습과는 달리 말투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서릿발이라도 한차례 쏟아낼 기세였다.

“이것을 전달하기 위해서 왔소.”
판관 이행령은 품속에서 홍주목사 권자헌의 서신을 꺼내들었다. 이어 이행령이 서신을 건네자 공소장 마리아가 희고 가는 손을 뻗어 건네받았다.

서신을 펼쳐든 마리아는 판관 이행령을 한차례 힐끗 쳐다보고는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금마공소 김마리아 보거라. 너희들이 지금은 시절이 어수선해 산 속에 은거하고 있지만 평생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 나는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다. 지금 내포 땅에 역모의 조짐이 일고 있다. 너희들이 우리 관군을 도와 역모를 진압하는데 일조한다면 내 상소를 올려 천주학이 떳떳한 믿음으로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조정에서도 분명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 천주학이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한다. 잘 생각해 보고 공을 세울 기회를 잃지 마라. 홍주목사 권자헌.’

서신을 읽고 난 공소장 마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는 고갯마루 아래로 눈길을 돌렸다.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눈치였다.

“뭡니까?”
뒤에 서 있던 덥수룩한 사내 손요한이 물었다. 목에는 굵직한 나무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뭔데 그럽니까?” 철립을 쓴 사내도 물었다. 성요셉이었다.

“저들이 제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에게 달콤한 꿀이 될지 아니면 고통스런 피가 될지 모르겠군요.”
공소장 마리아의 심드렁한 대답에 판관 이행령은 가슴이 철렁했다. 둘러 선 사내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무슨 말입니까?”
요셉이 다시 묻자 공소장 마리아가 산 아래에서 눈길을 거둬들였다. 그리고는 사내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간단히 얘기할 사안이 아닌 듯싶습니다. 일단 공소로 올라가십시다!”
공소장 마리아는 고갯마루를 다시 올랐다. 그녀를 따라 사내들과 이행령도 발길을 옮겨 놓았다. 공소장 마리아는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듯 입을 꼭 다문 채 고갯마루를 올랐다. 사내들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판관 이행령은 갖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섰다. 숨을 헐떡이며 둘러보니 곳곳에 사람들로 가득 했다. 나무를 엮어 만든 낯선 십자가도 보였다. 치마를 두른 여인들과 아이들을 비롯해 노인들까지도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시시덕거리며 희희낙락하는 모습도 보였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공소장 마리아는 고개에 올라서 등성이로 향했다. 나무로 지은 공소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공소 꼭대기의 십자가가 낯설게 눈을 끌었다. 서양 귀신이 깃들었다는 집이다. 판관 이행령은 속으로 나무관세음보살을 되뇌었다. 자신을 서양귀신으로부터 보호해 달라는 뜻이었다.

일행은 공소로 들어섰다. 나무로 지은 건물로 겉으로 보기에는 허술해 보였으나 안으로 들어서니 제법 널찍하고 안온했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앞쪽 벽면에 걸려있고 바닥에는 커다란 멍석들이 깔려 있었다. 탁자와 의자도 한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판관 이행령은 낯선 분위기에 묘한 감정이 일었다. 말로만 듣던 그 서양인의 천주교 예배당에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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