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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천명 (16) 최처인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6.07.18(월) 19:59:0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천명 (16) 최처인 1



천명 (16) 최처인 2
“이건 연경에서 가져온 먹입니다요. 최고급품입죠. 이건 서수필이고요. 나리 같은 분들께 어울리는 물건입니다요.”
사내는 웃음까지 흘리며 최처인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눈길은 매섭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최처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던 것이었다.

“몰락한 양반이 무슨 글을 쓰겠는가? 필요 없네.” 최처인의 한 숨 섞인 말에 사내는 싱긋 웃으며 다른 물건을 집어 들었다.

“이건 최음제입니다요. 복주에서 들여온 것입지요.”
최음제라는 말에 최처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효과가 좋습니다요. 마음에 두고 있는 기생이나.”
사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최처인의 호통이 터져 나왔다.

“예끼, 이 사람아! 어디라고 감히 그런 저열한 것을 내미는가?”
최처인의 호통에 사내는 그만 뜨끔한 얼굴로 움찔했다. 자신이 실수했음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내 비록 몰락한 양반이기는 하나 아직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네. 공맹을 모시고 세상 이치를 논하는 사람이 그런 못된 짓에 눈을 돌리겠는가? 잘못 짚었네. 다른데 가서 알아보게나.”
꼬장꼬장한 태도에 사내는 내밀었던 손을 얼른 거둬들였다. 그리고는 서둘러 사과의 말을 건넸다.  

“몰라 뵈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무지렁이 장돌뱅이이다 보니 돈에 눈이 멀어 그만.”
사내는 말도 다 잇지 못하고 그만 말꼬리를 자르고 말았다. 그 사이로 최처인의 물음이 비집고 들어갔다.

“보아하니 이곳 보부상은 아닌 듯 한데 어디서 왔는가?”
“예, 강경에서 왔습니다요. 해미에 들렀다가 지나는 길에.”
사내의 예리한 눈이 최처인의 표정을 훔쳤다.
“강경이라면 전라도 쪽으로도 많이 다니겠구먼?” 난데없는 전라도라는 말에 사내는 너스레까지 떨어대며 침을 튀겼다.

“전라도야 저희 앞마당입지요. 내포 땅 깊숙이 들어와 본 것도 솔직히 이번이 처음입니다요.”
“천하를 요대기 삼아 산다는 자네들이 내포 땅이 처음이라니?”

“말이 그렇지 저희 장돌뱅이들도 다니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요. 저는 주로 옥천이나 제천 그리고 전주, 남원 쪽으로 다니고 있습지요.”
사내는 말꼬리를 잘랐다가 다시 이었다.

“물목에 따라 잘 팔리는 곳이 따로 있습니다요. 단골도 만들어 놓았고요. 그래서 다니던 곳으로 주로 다니는 것이 저희들 습성입니다요.”

“그럼 이곳에는 다시 올 일이 없겠구먼?”
“그렇습지요. 접장님의 심부름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요.” 최처인은 잠시 앞산을 먼산바라기로 바라보았다.

“자네,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뜬금없는 물음에 사내는 긴장하는 눈빛을 보였다. 아니, 뜬금없는 물음이 아니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듯 했다. 

“어떻게 보다니요?” 사내의 되물음에 최처인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같이 힘없는 백성들이 이 조선 땅에서 살기에 어떠한가하는 것을 묻는 것일세.”
“에이, 저희 같은 무지렁이들이야 그저 사는 대로 사는 것입지요.”
“그래, 불만이 없다는 겐가?”
불만이 없냐는 말에는 또 울분을 토해냈다.

“불만이 왜 없겠습니까요. 하지만 불만이 있어도 입 다물고 살아야 하는 것이 저희들 운명인걸요.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고 또 지껄여봐야 제 입만 아프니까.”
“아닐세, 왜 그렇게 사는가?”
생각지 못한 반응에 사내는 눈을 크게 뜨고는 최처인을 똑 바로 쳐다보았다.

“아니라니요? 그럼, 어떻게?”
사내는 말을 끊었다가는 놀란 눈으로 다시 이었다.

“설마! 큰일 나십니다. 나리.”
사내의 호들갑에 최처인은 껄껄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람아, 세상은 이미 돌아섰다고. 백성들이 떠난 세상을 어찌 두려워하는가?”
“하긴 그야 그렇습지요. 누구하나 불만 없는 사람이 없으니.”
사내의 동조에 최처인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섰다.

“자네도 팔자를 한 번 바꿔볼 생각 없는가?”
“팔자를 바꾸다니요?”

“세상을 바꿔보자는 말일세.”
최처인의 말에 사내는 대뜸 사방을 둘러보았다. 누가 듣고 있지는 않나 하는 두려움의 빛이 역력했다. 그런 사내의 태도에 최처인은 다시 껄껄웃음을 터뜨렸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나리. 정말 큰일 나십니다요. 함부로 이야기했다가는.”  
사내는 다급히 늘어놓았던 물목을 갈무리하며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괜찮네. 이렇게 한적한 곳에 누가 엿듣는다고 그러는가? 걱정할 것 없네.”
“그래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습니다요. 더구나 그런 말씀은 입에 올리기도 두려운 역모인데.” 사내는 치까지 떨어댔다. 그러자 최처인이 허허 웃으며 사내를 달랬다.

“알았네, 내 그만 할 테니. 그리 서두르지 말게.”
최처인의 그만한다는 말에 사내는 그제야 급한 손길에 여유를 뒀다. 그리고 사내의 손길에 여유가 생기자 최처인은 다시 넌지시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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