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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미소 (63) 패전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5.12.07(월) 11:25:5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미소 (63) 패전 1

미소 (63) 패전 2

“너희들은 이 길로 곧장 장군을 모시고 고구려로 가거라.”
흑치상지의 명령에 백제 싸울아비 천승과 사택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살아서 백제의 이름을 드날려 주시오. 지수신 장군.”
흑치상지는 마지막으로 지수신에게 작별의 말을 대신했다. 그러나 지수신은 말을 잊은 듯, 한 마디 대꾸도 없었다. 그저 회한이 서린 듯, 임존성 여기저기를 둘러 볼 뿐이었다.

지수신은 부축을 받으며 서서히 멀어져 갔다. 벌써 동녘으로 푸른 새벽이 잠을 깨고 있었다.
지수신이 남문 언저리로 사라지고 나자 흑치상지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졌다. 네가 이긴 것이다. 네가 진정 이 백제의 영웅이다.”
말을 마친 흑치상지는 북문 문루를 향해 서서히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발끝으로 채는 찬 이슬이 더욱 시리기만 했다.

이로서 백제는 완전히 문을 닫고 말았다. 지수신은 고구려로 떠났고 임존성은 성문을 활짝 열어 유인궤를 맞아들였다.

단은 연의 흔적을 찾아 가량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마을은 폐허로 변했고 사람의 그림자라곤 자취도 없었다. 시커멓게 썩은 시체와 고약한 시취가 속을 뒤집어놓을 뿐이었다. 전쟁의 잔인함에 단은 치를 떨어야했다.

약속했던 불암을 찾았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실망한 단은 연이 있을만한 곳을 모두 찾아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보원사에서 쓸쓸히 금당을 지키고 있던 의현대사만을 만날 수 있었다.
의현대사는 여전히 의연한 모습으로 단을 맞았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이 대사의 미소를 빼앗아가 버렸다.

“대사님, 살아계셨군요?”
단의 반가움에 의현대사는 고개만을 끄덕였다.

“네가 살아있었구나.”
의현대사는 단의 손을 잡고 어루만졌다. 

“마을이 모두.”
단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의현대사는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단은 차마 참상을 입에 올릴 수가 없었다.

“모두 임존성으로 떠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임존성으로 떠났어. 연도 죽지 않았다면 그곳에 있을 것이다. 어서 가 보아라.”
의현대사는 단의 마음을 읽고 손짓을 해댔다. 어서 가보라는 것이다.

“대사님. 대사님께서는.”
단이 걱정을 하자 의현대사는 손을 내저었다.

“그 참혹한 피바람 속에서도 살아남았는데 이제 무슨 걱정이 있겠느냐. 모두 인연 따라 사는 것이다.”
“그럼, 연을 찾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대사님.”
의현대사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파리한 얼굴이 전쟁의 참상을 다시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보원사의 금당과 탑은 여전히 굳건하고 의연하기만 했다. 그러나 사람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많던 스님들과 공양주들과 불자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바람도 구름도 지저귀는 새들도 모두 한 결 같이 드나들고 있건만.

단은 숨이 턱에까지 닿도록 빠른 걸음으로 임존성으로 향했다. 넘었던 고개를 다시 넘고 들판을 가로질렀다. 그러나 사람의 그림자는 역시 보이지 않았다. 전쟁이 모두 삼켜버린 모양이었다.

마시산군을 지나 고개를 오르자 멀리 오산천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오산천에서 휘날리는 깃발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당나라 군선들이었다. 뱀의 몸뚱이처럼 긴 군선의 행렬이 이제 막 오산천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단은 눈이 커졌다.

“전쟁이 끝났단 말인가?”
단은 발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오산천 인근에 다다르자 웅장한 군선의 행렬이 눈을 부시게 했다. 화려한 깃발과 위용을 자랑하는 군선이 단의 가슴을 뛰게 했다. 군선에서는 북소리와 나팔소리 그리고 군사들의 왁자하게 떠드는 소리로 요란했다. 간간히 여자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단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오직 연의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단은 오산천을 거슬러 임존산으로 향했다. 연이 있을 곳이었기 때문이다. 오산천 상류로 오르자 당나라 군사들이 진을 쳤던 흔적들이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전쟁이 끝났구나. 그렇다면 연은?”
그제야 단의 머릿속을 뒤흔드는 것이 있었다. 좀 전의 상황으로 보아 당나라군이 승리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패한 임존성에 사람이 남아있을 리 없을 것이다. 단은 고개를 들어 임존산 위의 임존성을 올려다보았다. 깃발도 사람의 움직임도 없었다. 그제야 단의 머릿속으로 불길함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단은 부리나케 달렸다.

늦은 가을의 처연함이 아직도 임존산 아래에 맴돌고 있었다. 쓸쓸히 낙엽이 뒹굴고 찬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있었던 것이다. 가파른 임존산 돌길을 오르다 단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계곡은 그야말로 지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계곡물은 온통 시뻘건 핏물이었다. 곳곳에서 썩고 있는 군사들의 시체는 눈뜨고 보지 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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