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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미소 (57) 한숨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5.09.17(목) 15:49:1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미소 (57) 한숨 1

미소 (57) 한숨 2

“장군, 그렇다면 목책이 텅 비었을 것 아닙니까? 적이 야습이라도 한다면.”
덕집하의 호들갑에 지수신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남은 군사로 목책까지 방비하기는 무리이다. 버리고 성을 굳게 지키느니만 못하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남은 군사로는 임존성의 성벽을 지키는 것도 빠듯할 듯 했다. 이제 일만 명이 채 되지 않는 군사만 남았으니 목책까지 생각하기에는 너무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지수신은 단상으로 올라섰다. 그리고는 군사들과 백성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토해냈다.

“백제의 용맹한 싸울아비들이여, 백제의 자랑스러운 백성들이여. 이제 우리는 죽음으로서 백제를 지켜내야만 한다. 흑치상지와 사타상여는 백제를 버리고, 우리를 배신하고 떠났다. 그러나 나 지수신은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죽음으로서 백제를 지켜낼 것이다. 모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저들에 맞서 싸우자.”
연과 초림은 초조한 얼굴로 지수신을 바라보았다. 횃불아래 번뜩이고 있는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을 태워버릴 만큼이나 이글거리며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연은 가슴이 아팠다. 그토록 믿었던 흑치상지가 임존성을 버리고 달아나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혹시 장군께서 적을 공격하러 나가신 건 아닐까?”
연의 넋두리에 초림이 싸늘하게 맞받았다.

“아직도 그렇게 상황판단을 못하고 있니?”
초림의 톡 쏘아대는 소리에 연은 순간 멈칫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자리에 멈춰선 듯한 순간이었다.
“우리가 하나 되어 버틴다면 승리할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패배라는 치욕만이 남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저 당나라의 개가 되어 흑치상지를 따라갈 사람이 있다면 가라. 막지 않을 것이다.”
비장한 지수신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도열한 군사들 중에서 누군가 손을 들어 외쳤다.

“우리는 장군님과 함께 백제를 지킬 것입니다. 목숨을 다해 이 백제의 자존심을 지켜낼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장군님을 믿고 끝까지 함께 할 것입니다. 지수신 장군 만세!”
지수신 장군을 연호하며 군사들은 만세를 외쳐댔다. 그러자 보고만 있던 백성들도 하나같이 따라 외쳐대기 시작했다.

“지수신 장군 만세!”
연은 입으로는 지수신 장군을 외쳐대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흑치상지의 배신에 대한 의구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 그랬을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백제를 위해 그처럼 혼신을 다하던 그가 무엇 때문에 백제를 버리고 스스로 치욕의 길을 선택했단 말인가? 의구심을 넘어 가슴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연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단을 이별할 때의 아픔이 다시 살아났다.

“우리는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제 목책은 포기하고 임존성만 사수한다.”
지수신은 다시 부대를 정비했다. 부장 덕집하로 하여금 오천의 군사로 남문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삼천의 군사로 북문을 지켰다. 교대할 군사가 부족해 상황은 점점 더 열악해져갔다. 그러나 백제를 지킨다는 자존심은 더욱 높아만 갔다. 싸늘한 가을 하늘만큼이나 높아만 갔다.

살갗으로 닿아오는 공기가 제법 싸늘해져있었다. 오산천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 흑치상지는 만감이 교차했다. 자신이 제 발로 임존성을 내려와 당나라 진영으로 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흑치상지의 입에서 깊은 한 숨이 배어나왔다. 이윽고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말발굽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오더니 흑치상지의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장군, 검교대방주자사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먼저 보낸 전령이 당 군의 부장 하수량을 대동하고 왔다. 하수량은 어둠 속에서도 공손한 언사로 흑치상지를 맞았다. 흑치상지의 가슴이 울컥했다. 적장으로부터 환대를 받는 모진 운명을 어찌 감당하란 말인가? 흑치상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가시지요.”
흑치상지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앞선 하수량이 먼저 말머리를 돌렸다. 어색한 침묵이 싸늘하게 감돌았다. 그러나 여전히 흑치상지는 말없이 뒤따를 뿐이었다. 서걱거리는 갈대가 어색한 침묵을 흔들어 깨우는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처량한 밤새소리가 흑치상지의 우울한 마음을 뒤흔들어댔다. 

당 군 진영에는 불빛이 대낮같이 밝혀지고 유인궤를 비롯해 유인원과 손인사, 풍사귀, 방효태 등 제장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흑치상지는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다. 외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반갑소. 잘 왔소이다.”
검교대방주자사 유인궤가 먼저 맞이했다. 넓은 이마와 구불거리는 거친 수염이 대륙의 사람다웠다.

“흑치상지가 인사 올립니다.”
흑치상지는 말에서 내려 간단히 그러나 가볍지 않게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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