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연재소설] 미소 (56) 후회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5.08.28(금) 21:51:4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미소 (56) 후회 1

미소 (56) 후회 2

‘더 큰 세상을 위한 일이다. 장부로 세상에 나와 어찌 이름 없이 지고 말 것인가? 더 큰 일을 위해서라면 지금의 작은 일은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흑치상지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자신의 배신을 합리화시켰다. 그렇게라도 해야 만이 지금의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백제의 재건이 실현될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배신이라는 낙인은 감수할 만한 것이다.’
흑치상지는 억지로 이렇게 되 뇌이며 흐드러진 단풍을 내려다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른 잎을 자랑하던 잎들이 오늘은 현란한 색채로 세상을 유혹하고 있었다. 흑치상지는 문득 그런 잎들의 화려함이 좋았다. 변하는 것에 대한 마음이 넉넉해졌던 것이다.

‘제행무상이라 했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사람의 마음도 그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흑치상지는 푸른 솔의 변함없음이 돌연 지겨워졌다. 늘 푸른 그 빛깔이 눈에 거슬리고 얄밉기까지 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일이다. 너무 자책할 것 없다. 배신은 곧 백제를 위한 일이다.’
흑치상지는 끊임없이 자신을 위로하며 새로운 인생에 대한 계획을 정리해갔다. 군막 밖으로 시든 잎이 처량하게 굴러갔다. 바람은 그렇게 세상일에 무심한 듯 낙엽을 흩뜨리고 있었다.

사타상여는 부리나케 준비했다. 곧 해가 지고나면 은밀히 성을 빠져나갈 것이다. 흑치상지를 따르는 이천 여명의 군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이미 삼천 여명의 군사들은 대책과 소책으로 빼 돌린 상태였다.

성 위의 이천 여명만이 은밀히 빠져나가면 된다. 그러나 그도 이미 북문에 대기시켜 놓은 상태다. 문만 열고 나가면 남문을 지키고 있는 지수신이 눈치 채지 못하게 무사히 성을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지수신이 알았을 땐 이미 늦어있을 것이다.

밤이 깊어지자 흑치상지는 도열해 있는 군사들을 이끌고 성을 나섰다. 대책과 소책의 군사들과 교대한다는 명분이었다. 구름이 별마저 집어 삼킨 검은 어둠은 배신자들을 잘도 감추어주었다. 흑치상지가 앞서고 사타상여가 뒤를 맡아가며 나가는 배신자들은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아니,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흑치상지가 군사들을 이끌고 성을 나가자 북문 쪽은 텅 비었다. 문루에도 지키는 군사가 없고 한가한 몇 몇 백성들만이 횃불아래 모여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교대해 돌아온다던 군사들이 소식이 없자 그제야 백성들은 불안했고 이상스럽게 여긴 누군가가 남문의 지수신에게 달려가 보고했다.
허겁지겁 달려온 지수신은 그제야 아차 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지수신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검은 어둠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흑치상지는 저 깊은 어둠 속으로 항복의 길을 걸어갔을 것이다.

“아, 내 실수로다.” 지수신은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모두 헛된 일이었다. “북을 울려라. 북을 울려 군사들을 집결시키도록 하라.”
노한 북소리가 난데없이 깊은 밤을 깨웠다. 불빛이 대낮같이 밝혀지며 군사들이 도열하고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대열을 정비하고 군사들을 점고하라!” 지수신의 명령에 군사들을 확인해 보니 목책을 방비하는 군사들을 빼고 모두 이천여 군사가 비었다.“오천이구나. 오천의 군사들이 흑치상지와 사타상여를 따라 당나라의 개가 되기 위해 나갔구나. 이런 죽일 놈들.”
지수신의 분노에 부장 덕집하가 물었다. “오천이라니요? 성 아래의 대책과 소책을 방비하는 군사들은.”
덕집하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지수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흑치상지가 계략을 꾸몄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한통속이다. 이미 흑치상지가 그렇게 꾸며놓았다.”
덕집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는 혼잣말로 중얼거려댔다. “그래서 그랬구나.” 덕집하의 중얼거림에 이번에는 지수신이 물었다.

“뭐가 말이냐?”
“엊그제 말입니다. 사타상여 이놈이 무슨 꿍꿍이가 있어 그런지 목책 방어 군사들을 교체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전체가 아닌 일부만 교체를 했습니다. 이제 생각해보니 모두 풍달군 군사들이었습니다.”
덕집하의 말에 흑치상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불찰이다. 세세히 살피지 못한 내 불찰이다.” 지수신이 한 숨을 짓자 덕집하가 불에 덴 듯 놀라 소리를 질렀다.
 
 
 
 

도정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연재기사]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