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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미소(54) 편지

청효 표윤명의 연재소설

2015.08.06(목) 15:03:3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미소(54) 편지 1

 

미소(54) 편지 2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필의 말이 임존성을 향해 치달렸다. 등에는 흰 깃발이 꽂혀 있었다. 유쾌하게 달리는 말은 오산천을 따라 임존성 아래에 다다랐다.

“장군, 적의 사자입니다.”
별부장 사타상여의 말에 흑치상지는 북문 문루로 올라섰다. 과연 뽀얀 먼지를 뒤에 달고 한 필의 말이 임존성으로 치닫고 있었다. 대책 앞에 멈춰선 사자는 뭐라고 외쳐댔다. 이어 백제군의 부장 귀실임유가 나섰다.

이어 사자는 말머리를 돌렸고 귀실임유가 편지를 들고 임존성으로 올랐다. 한참 후에 숨이 턱에까지 찬 부장 귀실임유가 북문 앞에 다다랐다.

“장군, 부여융 태자께서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부여융이라는 말에 흑치상지의 안색이 돌변했다. 예감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자께서?”
“그렇습니다.”
이어 북문이 열리고 귀실임유가 문루로 올라섰다. 다급히 편지를 받아든 흑치상지는 떨리는 손으로 펼쳐들었다. 틀림없는 태자의 글씨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붉은 단풍이 문루를 가로질러 성벽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장군 보시오. 백제를 재건하는 일은 장군과 내가 해야 할 천명
이오. 그러나 현실은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며 대당 황제폐하의 은혜로움으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오.

임존성이 비록 험하고 견고하며 백제의 싸울아비들이 용맹스럽고 충성스러우나 대당의 군사를 끝내 당하지는 못할 것이오. 또한 장군이 지혜롭고 출중하다하나 작은 성과 적은 군사로 버틴다는 것은 한계가 있을 것이오. 이미 모든 백제의 성들이 함락되었고 혈혈단신 남은 임존성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노릇이란 것은 장군도 이미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장군이 대당에 협력하여 임존성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면 검교대방주자사이신 유인궤 장군께서 백제를 새롭게 재건하는데 장군과 나를 돕겠다는 약속을 하셨소. 이는 검교대방주자사의 사사로운 의견이 아니라 대당 황제폐하의 뜻이기도 하오.

그러니 장군께서는 부디 생각을 달리하시길 바라오. 또한 만에 하나 장군이 이 편지를 가볍게 여기신다면 아버님을 비롯해 나와 여든 여덟의 신하들 그리고 백제의 억울한 백성 만 이천의 목숨이 모두 불귀의 객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셨으면 하오.

이는 이 한 목숨이 아까워 장군을 협박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백제의 재건을 위해 드리는 간절한 말씀이니 심사숙고하시기를 부탁 또 부탁하는 바이오. 임존성을 바라보며 백제국 태자 부여융.’
편지를 다 읽고 난 흑치상지는 두 눈이 흔들렸다. 떨어져 내리는 붉은 단풍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죽일 놈들.”
사타상여는 분노했고 뒤늦게 온 지수신은 편지를 찢어버렸다. 노한 눈빛이 붉은 단풍을 짓이겨 버릴 듯했다.

“이런 수작에 흔들리면 안 됩니다. 겨우 이따위 협박으로 우리 백제 싸울아비들을 농락하려 들다니. 가엾은 놈들 같으니.”
지수신은 입가에 비릿한 웃음까지 흘려대며 임존성 아래 당 군을 노려보았다.

“당장 말을 달려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습니다.”
지수신은 흥분에 겨워 칼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흑치상지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떨어지는 고운 단풍에 눈길만을 주고 있을 따름이었다.

“장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말 좀 해 보십시오.” 답답했던지 사타상여도 나서 재촉했다. 
“장군께서 혹시 흔들리고 계신 건 아니십니까?”
지수신이 묻자 흑치상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오. 어찌 그렇겠소.”
그러나 이미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지수신은 복신의 말이 그제야 가슴에 와 닿았다.

“허면 말씀을 좀 해 보십시오.”
지수신의 다그침에 그제야 흑치상지는 입을 열었다.

“다만 저들이 폐하와 태자를 비롯해 그 많은 백제 사람들을 욕보이려드니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려.”
“그것은 염려할 것 없습니다. 아무렴 저들이 죄 없는 폐하를 해치겠습니까? 그것은 저들의 협박에 불과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들의 야비한 수작입니다.”
사타상여도 거들고 나섰다.

“아무튼 방비를 철저히 하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도록 합시다. 끝까지 임존성을 사수하며 백제 싸울아비의 매운 맛을 보여주도록 합시다.”
지수신의 결의에 흑치상지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사타상여도 손을 내밀었다.

부여융의 편지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유인궤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계략이 들어맞지 않자 괜한 짜증까지 냈다. 그러나 부여융의 편지는 임존성에 작은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흑치상지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문루에 서서 붉게 물들어 가는 단풍을 내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눈길은 단풍너머 당 군의 본영에 가 있었다. 이를 눈치 채지 못할 별부장 사타상여가 아니었다. 그와 더불어 반평생을 함께 한 동지이자 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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