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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미소 (45) 석탑

청효표윤명 연재소설

2015.04.29(수) 11:51:58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미소 (45) 석탑 1

미소 (45) 석탑 2

금당 안에는 연이 꽃공양을 올리고 있었다. 단정히 무릎을 꿇은 채 석가모니불을 향해 두 손을 모은 연의 앞으로는 은은한 침향이 어둑한 공간으로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금빛 석가모니불 발아래에는 진홍빛 진달래가 한 움큼 놓여 있었다. 연은 중얼거리며 무언가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엎드린 연의 뒤로는 사각 안에 담긴 밝은 세상이 눈부셨다. 단아한 오층석탑과 그 뒤로 얌전히 늘어선 천왕문과 일주문 그리고 역천의 세심교까지, 모두 다 눈부신 봄날을 노래하는 사각 안 풍경이었다.

수정봉 앞에서 펄럭이고 있는 당간지주의 흰 깃발은 이곳이 부처님의 정토라는 것을 말 없는 침묵으로서 묵묵히 드러내고 있었다.
금당 옆으로 작은 정자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취개정이다.

“연이는 어떻게 하려는가?”
취개정 섬돌 아래에서 흰 수염에 주름진 노승이 뒷짐을 진 채 단에게 물었다. 단은 물음에 잠시 머뭇거렸다. 노승은 기다렸다. 햇살이 오층석탑의 보륜과 보주를 다시 한 번 빗겨갔다. 눈이 부셨다.

“돌아와 예를 올릴 생각입니다.”
노스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너편 수정봉을 먼산바라기 했다.

“바다는 험하다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는가?”
단은 또 다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고 노스님이 먼저 말을 이었다.

“세상살이 방편이라는 것이 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닐세. 찾아보면 그리하지 않고도 방법이 있을게야. 저 여린 처자를 두고 그 먼 바다를 건너 다녀온 다는 것이 그리 녹녹하지 만은 않을 텐데.”
노스님의 말끝에 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단도 노스님의 말을 이해했다. 세상은 혼란스러웠다. 이미 사비성이 위태롭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신라군이 백제 땅을 짓밟고 사비성까지 목전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소문은 흉흉했다. 백제가 무너지고 세상은 신라의 것이 된다고 한다. 백제 사람들은 신라인의 노예로 전락하고 백제라는 이름은 철저히 묻힐 것이라고들 한다. 인근 임존성에는 이미 백제를 구하기 위한 백제의 충성스런 싸울아비들이 구름같이 모여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손에 쥔 것도 없이 어찌 연이를 데려갈 수 있겠습니까? 목구멍에 풀칠은 해야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헛것 인 게야. 그것에 너무 연연하다보면 정작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어.”
노스님은 훈훈히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취개정 아래 회랑을 따라 걸었다. 단은 멀어져가는 노스님의 회색빛 승복을 무연히 바라보았다. 단의 입에서 깊은 한 숨이 새어나왔다.

금당의 쪽문이 열리고 긴 머리에 감빛 치마저고리를 입은 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은 연을 바라보자 짧게 한 숨을 몰아쉬고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어 올렸다. 연의 입가에도 미소가 어리었다.

“무얼 그렇게 열심히 빌고 나오는 거야?”
“부처님께 빌 게 뭐가 있겠어.”
살짝 치뜨는 눈매가 아름답고도 매력이 넘쳤다. 흐드러진 진홍빛 진달래만 같았다. 설레는 마음이 가슴으로 넘쳤다. 단은 두 손만을 비벼댔다. 할 말이 많았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연이었다. 입을 샐쭉하고는 먼저 말을 꺼냈다.

“단이 마음은 알아. 하지만 난 반대야. 그 멀고도 험한 바다를 건너 장안에까지 갔다 온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야.”
연의 반대에 단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일 년이야. 일 년만 고생하면 우리 평생 잘 살 수 있을 거야. 잠깐 이잖아.”
잠깐이라는 말에 연은 더욱 불안했다. 그 일 년이 기약이 없는 일 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지금같이 어지러운 때에는 앞날을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이 달 보름에 상단이 떠나기로 되어 있어.”
연은 발걸음을 옮겨 금당 앞 오층석탑으로 향했다. 내딛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뒤따르는 단의 걸음걸이도 그랬다.

영원을 품은 석탑은 푸른 하늘아래 그렇게 우뚝 서 있었다. 보주의 반짝이는 빛이 탑을 더욱 신비롭게 했다. 연은 두 손을 모아 합장을 올렸다. 입으로는 석가모니불을 연신 외워댔다. 단도 조용히 따라했다. 그러나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다.

“이 석탑의 영원함처럼 너를 향한 내 마음도 변치 않을 거야.”
단의 넋두리에 연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불안한 미소였다. 연은 합장을 한 채 탑을 돌았다. 단도 따라 돌았다. 두 남녀가 탑을 돌며 말없음으로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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