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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미소 (43) 흰 소

청효 표윤명 연재소설

2015.04.09(목) 11:14:0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미소 (43) 흰 소 1


미소 (43) 흰 소 2

단은 노인과 함께 석불을 옮겼다. 석주포를 오가며 삼천 오십삼불을 옮겼던 것이다. 여섯 번을 왕복하니 흰 소가 지쳐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소의 걸음걸이가 예사롭지를 않았다.

“어르신, 소가 많이 지쳤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하시지요?”
단이 조심스럽게 건넸으나 노인은 단호한 소리로 거절했다.

“일이란 다 때가 있는 법이오. 득도도 때가 있는 법이고. 어찌 예서 멈출 수 있겠소.”
노인의 말에 단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려우면 쉬어야 하고 더구나 지친 소가 안타까움을 넘어 가엾기까지 했다. 금당을 짓고 전각을 마련하려면 아직 시간도 충분했다. 그런데도 굳이 소를 혹사시키며 서두르는 노인이 단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단은 노인과 함께 마지막 석불을 싣고 석주포를 출발했다.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그리고 대세지보살 삼존상과 십육 나한상을 비롯한 나머지 석불들이었다. 흰 소는 지쳐 입에 거품을 흘리며 겨우겨우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단은 보기에 딱해 죽을 지경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멍에를 걸머지고 싶을 정도였다.

“이 모두 깨달음을 위한 일이니 어찌 기쁜 일이 아니겠소.”
엉뚱한 말에 단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러한 미물도 부처님의 은덕으로 깨달음을 얻어 극락정토에 든다면 그것도 또한 부처님의 소중한 인연이 아니겠소. 세상에 나와 깨달음을 얻고 정진하는 기쁨을 얻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디 있겠소.”
노인의 말에 단은 수긍을 했으나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지친 소의 가엾음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오. 몸으로 느끼는 것이 전부도 아니오. 그 너머의 것이 진정한 것이오. 젊은이도 그런 것을 깨달을 날이 오리다.”
말을 마친 노인은 껄껄웃음을 터뜨렸다. 단은 이 예사롭지 않은 노인의 정체가 궁금했다.

“세상에 나와 흔적을 남겨놓는 것만큼 소중한 인연도 없을 것이오. 저 의각대사의 흔적은 천년을 넘어 가리다. 젊은이도 그런 흔적을 하나쯤 남겨 둔다면 이 세상에 나온 보람이 있을 것이오.”
노인은 말을 마치며 합장을 올려댔다. 마차는 어느새 금오산 아래에 이르러있었다. 그러나 흰 소는 곧 쓰러질 듯 비틀거렸다.

“때가 무르익었구나!”
노인은 한 차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렸다. 단은 슬펐다. 인간을 위해 자신의 생명마저 저버려야하는 흰 소의 신세가 가여웠기 때문이다.

비틀거리던 흰 소는 금오산 입구 큰 바위 앞에 이르러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는 마침내 두발을 꿇고 무너져 내렸다. 이어 온 몸을 쓰러뜨리며 죽어갔다.

“이제야 네 갈 길을 찾았구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단을 돌아보았다.

“가서 의각대사님께 소가 제 갈 길을 찾았으니 이 바위 앞에서 넋을 위로해 달라고 하시오.”
노인의 말에 단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리고는 얼마쯤 가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위 앞에 때 아닌 옅은 안개만이 감돌고 있었다. 노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놀란 단은 부리나케 의각대사에게로 달려갔다. 사연을 들은 의각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놀란 기색도 전혀 없었다.

“그랬구나, 가 보도록 하자!”
의각대사는 하던 일을 멈추고 단을 따라 나섰다. 바위 앞에 이르자 흰 소는 입에 거품을 문채 죽어 있었다.

“이 앞에 이르러 크게 울부짖다가는 쓰러져 죽었습니다.”
단의 말에 의각대사는 바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이 바위를 일러 고함바위라 해야겠구나.”
단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각대사의 의중을 알아듣겠단 것이었다.

의각대사는 흰 소를 두고 12인연법을 연설했다. 단은 죽은 소를 두고 설법을 하는 의각대사가 의아했다. 살아서도 알아듣지 못할 것을, 죽은 소를 두고 하는 설법이 의아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좀 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은 어느새 고함바위 앞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아졌다. 사람들은 의각대사의 설법에 매료되어 자리를 뜰 줄 몰랐다. 의각대사의 설법이 끝나자 사람들은 의각대사의 뜻을 알고는 돕기를 자청했다.

“모두 다 부처님의 소중한 인연이니 우선 이 소로 하여금 편안한 자리를 잡도록 해 줍시다.”
의각대사의 말에 사람들은 흰 소를 계곡 안 산기슭에 고이 묻어주었다. 그리고는 금당과 전각을 세우는 일에 동참했다.

이튿날부터 금오산 아래에 분주한 움직임이 일었다. 나무를 베어 기둥을 세우고 흙을 구워 기와를 만들었다. 단은 구자산에서 익힌 솜씨로 돌을 다듬었다. 석축을 쌓기 위한 것이었다. 돌 쪼는 소리가 매일 금오산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일은 늦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부녀자와 노인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서서히 금당이 세워지고 전각이 모습을 갖춰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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