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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농로 길 따라 걸어본 우리동네

2015.01.12(월) 21:09:13 | 도희 (이메일주소:ass1379@hanmail.net
               	ass137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농로 길 따라 걸어본 우리동네 1
 

꽁꽁 얼어붙었던 날씨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1월 11일 주말에 예산군 신암면 두곡리 계촌리 일대를 카메라를 메고 돌아다녔습니다. 농로 길을 따라 걷는 시골 산책길 앞에는 간간이 마을이 펼쳐지고 얼어붙은 논에는 벼를 벤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벼 밑동을 땅에 박은 채 묵묵히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이겨내는 생명의 땅이 있습니다. 비록 추위에 움츠려 있는 저 흙에도 머잖아 봄기운이 만연한 햇살이 빛나는 날에는 생다시 생명의 싹이 올라올 것입니다.
 

농로 길 따라 걸어본 우리동네 2

몇년 째 도지를 얻어 컨테이너 농막을 짓고 노지 쪽파를 재배하는 이웃 아저씨의 넓은 땅에는 가을에 미처 수확하지 않은 쪽파가 파랗게 살아있습니다. 쪽파는 웬만한 추위에도 견디기 때문에 겨울을 잘 견디면 봄에는 싱싱하게 되살아나게 됩니다. 작년에는 배추 무 쪽파가 워낙 싸서 수확 하려면 인건비가 안 나온다 생각되면 그냥 밭에서 묵히게 되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됩니다. 농사도 돈을 목적으로 상업성을 생각하다가 보면 타산이 맞아야 생산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농촌에 일꾼 구하기가 어려워 70세 이상 노인들도 겨울에 쪽파 작업하러 하우스 시설에 일하러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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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그대로 버려진 배추가 꽁꽁 언채로 남아있습니다.
 

농로 길 따라 걸어본 우리동네 4

 동네를 돌아오는 길에 간간이 눈에 띄는 비닐하우스 안에는 쪽파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시설 하우스안에 이중비닐을 씌우면 한겨울에도 쪽파 생산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농로 길 따라 걸어본 우리동네 5

동네를 돌아가는데 요란한 기계 소리가 나길래 기웃거려 보았더니, 마침 한 농가 마당에서 60대 부부가 콩을 터는 기계로 콩과 껍질을 분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취재해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하고 사진 몇장을 찍는 동안에 콩을 털다 말고 이런저런 농부의 넋두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농산물 폭락으로 지금은 농사지어서 살기가 힘든 농촌 실정이라고 합니다. 쌀농사 일만평 지어봐야 기곗값 비료값 제외하고 나면 천만원 손에 쥐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왜 작년가을에 수확한 콩을 지금 터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수확기에는 너도나도 콩을 털려고 줄을 서기 때문에 기계를 대여하기가 쉽지 않기에 기다렸다가 농한기에 콩을 털게 되었다고 합니다. 콩터는 기계는 동네 지인이나 인근 농업기술센터에서 대여한다고 합니다.

대화중에 지금은 없어진 신례원에 있었던 충남방적공장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아저씨 젊은 시절에는 농사는 돈이 안 되어 식구들 먹거리 정도만 농사짓고 충남 방적공장에 다니며 돈 벌어서 자녀들 키웠다고 합니다. 규모가 꽤 큰 공장이라 전국에서 온 2500 여명의 공녀들이 일 했다고 합니다. 덕분에 이곳 농촌 총각들이 그녀들을 만나서 결혼할 기회를 얻었고 소외양간을 고쳐서 신방을 꾸민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공장 회장님께서 국회의원에 출마하는데 직원들에게 막걸리 한잔 베풀지 않고 출마하는 바람에 낙선하여 공장도 여러 가지로 어렵게 되고 부도의 위기가 왔다고 합니다.
 

농로 길 따라 걸어본 우리동네 6

멀리 보이는 비츠로 건전지 회사는 올해 사원들이 거주하는 사택을 지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신암 농공단지에는 다섯군데 동물약품 회사들과 건전지 회사가 있습니다. 신암면 일대의 사오십대 여성들은 집안 농사를 병행하면서 평일에는 이 회사에 출근하여 일을 하므로 생계의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자녀들 학비 뒷바라지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귀농귀촌도 무조건 농사만 지어서는 어렵고 특히 대농을 하기 위해서는 큰 땅을 큰돈 들여서 사야 합니다. 경험 없이는 농사가 어렵고 처음에는 작은 농사로 시작하여 식구들 먹거리 자급자족하고 인근 회사나 공장에 가서 일하여 생계비를 버는 방법이 가장 안전한 귀농.귀촌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회사나 공장은 비록 정년 60세까지는 일을 할 수가 있지만, 신입 사원은 50세가 넘으면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귀농.귀촌도 나이가 들기 전에 해야 안전하게 정착할 수가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옛말에 농사를 지어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시야에 아파트가 보이는 곳에 정착하라는 일설도 있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 멀리 시야에 인력을 필요로 하는 공장이나 회사가 있는 곳에 정착해야 서민들은 살아가기가 쉽지 않나 생각합니다. 서민들의 안전한 귀농.귀촌 정책도 조금 넓은 안목에서 판단하고 접근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경험 없이 농사는 어렵고 거금을 들여 토지를 소유 해야하는 경제적인 기반과 노동력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농촌에 일손이 부족한 이유는 농사짓는 노동력보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고 인건비도 높기 때문이라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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