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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전주시절 고암 이응로 행적 밝혀내려 노력”

[인터뷰] 이용엽 전주문화원 동국진체연구소장

2014.07.16(수) 22:25:31 | 홍주신문 (이메일주소:rlarudal4767@daum.net
               	rlarudal4767@daum.net)

“전주시절 고암 이응로 행적 밝혀내려 노력” 1



-고암 이응노와 막역했던 효산은 누구인가
“효산 이광열은 구한말 전주 지역의 향토사와 교육, 문화, 예술을 발전시킨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항일정신을 불태운 효산은 글씨와 사군자 분야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고 1927년과 1928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해 입선하는가 하면 1930년 일본 교토문예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또 예향의 고장에서 큰 역할을 하며 근현대 전북지역 서화를 주도했던 서예학원인 한묵회를 결성해 서예발전에 힘썼고 그가 머물던 학인당은 전라도 지식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며 교류에 앞장선 인물이다.”

-고암과 효산에 얽힌 일화가 있나
“이응노 화백과는 그가 전주에서 10여년 이상 긴 세월을 거주하는 동안 개척사(현 중앙동 4가24번지)를 경영하면서 효산 문하에서 사군자를 배웠고 특히 대나무를 익혔다고 들었다. 일각에서는 고암의 ‘죽사(竹史)’라는 호가 해강에게서 받았다고 하는데 전주 지역에서는 효산에게서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암과 같은 시대를 살던 지역의 어르신들은 고암과 박인경 여사의 혼인도 전주지역에서 중매를 서서 성사됐다고 하시는데 사실 파악은 안된다. 확실한 것은 고암이 20~30대를 전주지역에서 보내면서 효산을 비롯한 묵로 이용우 화백 등 당시 전주지역의 지식인들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근 전주에서 고암 연구가 움트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최근 전북도립미술관에서 효산 이광열 전을 열면서 그에게 대나무 그림을 배웠던 고암에 대해서도 작게나마 재조명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암과 동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전주에서의 기록이 많지가 않아 행적을 밝혀내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향후 세계적 화가로 발돋움한 고암이 효산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또 전주에서 10여년 가까이 거주한 만큼 그의 연구에 있어 전주시절의 행적이 보다 소상히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홍성, 대전, 전주 등의 교류·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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