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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로, 그림 그리며 생계 절실 간판집 사업도

홍성을 떠나 서울서 그림 배우던 스무살 중반 홀연히 전주로

2014.07.16(수) 22:22:18 | 홍주신문 (이메일주소:rlarudal4767@daum.net
               	rlarudal4767@daum.net)

고암 이응로, 그림 그리며 생계 절실 간판집 사업도 1

고암 이응노 화백의 행적과 관련해 가장 연구가 미진한 부분은 바로 전주에서의 족적일 것이다. 고향 홍성을 떠나 서울에서 당시 사설서화학원을 운영 중이었던 해강 김규진 밑에서 전통사군자를 배우던 고암은 그가 스무살 중반 무렵에 홀연히 전라북도 전주로 내려가 ‘개척사’라는 이름의 간판점의 문을 열었다. 그

림을 그리기 위해 고향집을 가출하다 시피 떠난 고암은 서울 스승의 집에 기거하며 그림을 배웠지만 역시 생계가 문제였다. 간판점은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생계수단으로 생활력이 남달랐던 고암은 성공적으로 운영했다고 전해진다.

고암은 개척사에서 상업간판의 글씨를 쓰는 일과 극장 간판 그리는 일을 했다. 간판업을 습득한 고암은 독립해 사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둬 규모가 클 때는 페인트 장인 30~40명을 거느리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모은 돈은 고향에 보내졌다. 생업 이외에도 작품활동에 매진했던 고암은 전주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1933년 10월 11일 발행된 동아일보 기사에는 “본적을 충남 홍성에 두고 방금 전주 팔달정에서 개척사라는 미술 간판업을 경영하는 청년화가 이응노(30) 군의 개인전람회를 오는 11월 12일 전주공회당에서 개최하리라는데 동 군은 일찍이 17세부터 해강 김규진 씨의 문하에서 오랫동안 동양화를 연구하야 수차 선전에 특선까지 된 청년화가라 한다. 그래 군의 예술을 아끼는 전주 유지 제씨의 발기로 전기와 같이 개최한다는데 일반은 다수히 관람하기 바란다고 한다”고 게재된 바 있다.

고암이 왜 전주로 향했는가에 대한 이유는 아직까지 모호하다. 그러나 약 10여년의 세월을 전주에 머물면서 생업과 작품활동에 매진했던 그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실마리가 다소 풀린다. 김진돈 전라금석문 연구회장이 올 6월 월간 묵가(墨家)에 기고한 글 ‘호연지기로 예술혼을 불사른 효산 이광열’에서 20대 중반의 고암이 당시 전주지역의 사상적 지주였던 효산과 막역한 관계였음이 드러난다.

효산 이광열은 당시 전북서화계에서 가교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1935년 호남 지역 최초의 서예학원인 한묵회를 결성해 서화발전에 힘쓰는 한편,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호남일대의 최고의 문화공간으로 역할을 했던 학인당(學仁堂)에 머물며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가들과 활발한 접대·교류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진돈 회장을 비롯한 전주 서화계 원로들에 따르면 고암 이응노 역시 전주에서 활동하는 동안 학인당의 효산을 찾아 시서화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은 물론 깊은 교분을 나누며 영향을 받았다.
 

고암 이응로, 그림 그리며 생계 절실 간판집 사업도 2

  ▲ 효산 진갑 기념 묵죽(이응노 작, 1945). 일본생활을 마치고 1945년 고국으로 돌아온 고암 이응노가 1928년부터 1935년까지 효산에게서 배운 가르침에 대한 답례로, 효산에게 진갑기념 묵죽 작품을 바쳤다.


이용엽 전주문화원 동국진체연구소장은 “고암의 전주 시절에 만약 효산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이응노가 있었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지역 어른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20대 중후반 무렵 전주에 정착한 고암이 결국 개척사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개인전까지 개최한 데는 효산을 중심으로 학인당을 찾던 여타 지역 유지들, 예술가들과의 교류가 큰 힘이 되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고암은 전주생활 동안 꾸준히 작품 활동에 매진, 1931년에는 ‘청죽’으로 특선을 수상하고 이후에도 계속 입선했다. 이후 고암은 1935년 신문물을 배우기 위해 전주 개척사를 정리하고 일본으로 떠났으나 전주에서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효산과의 관계는 일본에서도 이어졌다. 효산의 61세(회갑)을 기념해 고암이 일본에서 제작한 작품 ‘묵죽(墨竹)’은 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 증거이다.

최근 효산의 생애와 효산을 중심으로 전주에서 활동했던 지식·예술인들의 발굴에 매진하고 있는 전북 문화계는 최근 고암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월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개최된 ‘효산 이광열 전’에는 효산 이광열을 중심으로 그 뒤를 잇는 묵로 이용우와 고암 이응노, 효산의 아들 인당 이영균 및 윤당 이기봉 등 지역 출신이거나 지역에서 활동했던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선보였다.

이 전시에는 고암이 효산의 회갑을 기념해 제작한 작품 ‘묵죽’과 개척사 운영 당시 국내외로 보내진 서신 90장 중 일부가 공개돼 전주에서의 고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계기로 평가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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