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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천판노인

[연재소설] 청효 표윤명의 미소-2

2014.01.16(목) 14:29:43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천판노인은 혼자서 신이 나서는 떠들어댔다.
 
“좋을 때지. 가슴이 부풀어있겠군?”
 
단은 수줍은 미소만을 지어보였다.

“나도 한 때는 그랬는데. 어떻게 세월이라는 놈이 이렇게 만들어놓았는지 모르겠어.”
천판노인의 입가에 아련한 회상이 맴돌았다. 말투에는 후회의 빛도 엿보였다.

“되돌아보았을 때 후회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게 사는 것이 이렇게도 힘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제 나이 들어 그걸 알게 되었으니.”

천판노인은 말끝에 혀를 끌끌차 댔다. 단은 천판노인의 말이 실감나지를 않았다. 그보다는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그것이 더 궁금했다.

“어르신께서는 어떤 후회되는 일이 있으셨기에 그러시는지요?”

단의 물음에 천판노인은 희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다른 쓸쓸함이 묻어나 있었다.

“재물은 남부럽지 않게 모았으나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는 짓이었네. 저 파도와도 같았지. 끝없이 세상을 호령할 듯 했으나 결국은 뱃전에 부딪쳐 부서지고, 갯바위에 부딪쳐 부서지고.”

말소리에는 회한까지 짙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와 같은 것이지. 허무하고 부질없고.”

거친 수염이 바람에 파르르 떨어댔다. 천판노인의 눈이 가늘게 떠지며 멀리 수평선 너머로 향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바람이 심상치 않네.”

천판노인은 자리를 일어섰다. 상단주 송천을 비롯해 뱃사람들도 어느새 모두 자리를 일어서 있었다.

“조짐이 심상찮다. 수평선 너머로 비늘구름이 일고 있어.”

송천은 손을 들어 수평선 쪽을 가리켰다. 새의 깃털 같은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위로는 찢어진 구름도 흩어지고 있었다. 단은 어리둥절했다. 바람도 적당하고 하늘도 맑았기 때문이다. 다만 바람이 때 아니게 찼다.

“봄바람이 더 무서운 법인데.”
“밧줄을 더 묶어라. 인삼과 잠사는 물에 젖지 않게 덧씌우고.”

천판노인의 지시에 따라 뱃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에 덴듯 놀란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에 단은 저절로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사람들의 부산함에 방해가 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일 것같았다.

“여기 좀 잡게.”

승월 아재의 말에 단은 줄의 끝을 잡았다. 그리고는 그의 지시에따라 줄을 묶었다. 그리고 그 위에 거적을 덧씌우고 또 다시 줄을 묶었다.

“남은 줄은 잘 가지고 있게. 용왕님 수라상에 올라가지 않으려거든.”

승월 아재는 짓궂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단은 궁금해 물었다.

“용왕님 수라상이라니요?”
“바다에 빠지면 그게 곧 용왕님 수라상에 올라가는 게지 뭐야. 배가 흔들리면 뱃전에 몸을 묶으라고. 배가 뒤집히면 할 수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제일 좋은 방법이지.”

그제야 단은 이해가 되었다. 뱃전에 몸을 묶어 위기를 모면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돛도 어느새 내려앉아 있었다. 굵직한 돛대만이 푸른 하늘을 찌르고서 있었던 것이다.

바람이 심상찮게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파도가 일렁였다. 배가무엇에 부딪힌 듯 쿵하고 올라섰다가는 아래로 힘없이 내려앉았다. 이어 머리 위로 시퍼런 물이솟구쳐 올랐다. 단은 숨이 멎으며 진한 공포에 휩싸였다. 입에서는 연신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놀란눈의 동공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확장되었다.

“뭐해, 빨리 묶으라니까!”

승월 아재의 외침에 단은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줄이 생각났다. 그 순간 배는 또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는 고개를 쳐 박았다. 여기저기에서 비명과 외침소리가들려왔다.

“뱃전에 바짝 붙어. 짐이 흔들리지 않게 잡고.”

그 상황에도 상단주 송천은 비틀거리며 짐을 챙겼다. 천판노인도 승월아재도 마찬가지였다. 물에 젖어 풀어진 머리카락이 마치 저승의 야차만 같았다. 단은 정신이 없었다. 허공으로 붕 떴다 떨어지는 느낌이 꼭 지옥의 어느 구석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사방은 온통 시퍼런 물뿐이었다. 흰 파도가 널름거리며 무엇이든 집어삼킬 듯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노련한 뱃사공과 상단사람들이 짐을 챙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단에게는 미안하고도 부끄러운 마음에 앞서 두려움이 먼저 일었다. 또 다시 집채만 한 파도가 언덕을 이룬 채 밀려왔다.

“꽉 잡아!”

상단주 송천의 외침이 귓전으로 날아들었다. 그 순간 뱃전으로 무거운 부딪힘이 느껴지며 배가 기우뚱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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