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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신문뉴스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해야 덜 힘들죠"

청양군 비봉면 신원리 강영남 씨의 농촌생활이야기

2013.11.20(수) 09:39:24 | 청양신문사 (이메일주소:ladysk@hanmail.net
               	ladysk@hanmail.net)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해야 덜 힘들죠" 1

“어떤 일이든 즐겁게 해야 덜 힘들죠" 2

 

오늘 만나볼 우리의 이웃은 청양군 비봉면 신원2리 강영남(51)씨다. 그는 남편과 함께 농사도 지어야 하고 또 사회활동도 활발히 하는 바쁜 여성 중 한명이다. 하지만 힘든 것보다 항상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다. 이유는 ‘어차피 할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서로 위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행복해 보이나보다’라고 덧붙인다. 그를 만났다.


“시골 살겠다는 말 좋았어요”
그가 살고 있는 마을에 들어서자 줄을 맞춘 듯 시설하우스들이 서 있고, 그 중 한 곳에서 흥겨운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소리를 따라 들어가니 양파 채종을 하고 있는 주인공이 보인다. 즐겁게 일한다는 말처럼 그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일손을 멈추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북 이리에서 2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여고 졸업 후 부산에서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5남매 중 막내아들인 안길희(55)씨와 1986년 결혼 후 남편 고향인 신원2리로 와 생활하고 있다.

“친정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비봉 양사리로 이사와 가축 키우고 농사지으며 잠시 생활하셨어요. 그 때 남편 친척께서 일을 도와 주셨는데 그 분이 중매를 하셨죠. 당시 전 부산에서 남편은 대전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데, 선을 보는 자리에서 남편이 ‘시골서 살겠다’고 거리낌 없이 말하더군요. 그런데 그 말이 싫지 않았어요.”

시골생활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다는 그는 그렇게 남편 안씨와 결혼 후 바로 시골로 왔다. 더욱이 그는 시부모와 함께 생활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까지 설?단다.

“청양서 선을 봤는데 그날 시아버님께서 집에 가보자고 하시더니, 감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가지를 뚝 잘라 주시는 데 그 모습이 좋았어요. 친정아버지 생각이 났죠. 그래서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하루 10명 식사 준비는 기본
이렇게 강씨는 신원2리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쉽지만은 않았다. 
남편 안씨는 농사 관련 일도 잘하고 전기, 보일러, 농기계 등 웬만한 기계는 모두 다룬다. 반면 강씨는 한번도 농사를 지어보지 않았던 문외한이었다. 모두 배우면서 해야 했다.

“처음 시작한 것이 좋은 씨앗을 받는 채종이에요. 이 곳이 채종 마을이었거든요. 고추, 가지, 브로콜리 등 다양했죠. 손에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서 힘들었지만, 그 보다 전 다른 것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참 채종작업을 할 때는 하루에 10명 이상씩 2달 여 동안 일꾼들 밥을 해야 했습니다. 채종이 끝난 후에 깨나 콩 등 이모작도 하고요. 정말 바빴죠. 다행이었던 것은 바쁠 때면 부모님과 형님들도 내려와 도와주셨어요. 지금은 채종을 거의 하지 않아요. 저희도 양파만 합니다. IMF 후 씨앗이 수입되면서 줄어들기 시작했죠.”

한창 채종으로 바빴을 당시, 매년 두 달 넘게 하루 10명 이상 씩 일꾼들의 밥을 해야 했던 그는 시장을 보러 다니기 위해 운전을 배웠다. 비포장 길을 걸어 다닐 수 없어서였다.

“남편이 운전을 가르쳐 주더군요. 그렇게 운전을 배워 시장을 보러 다녔고 밥을 해댔어요. 지금은 하우스에 조그만 라디오를 틀어놓는데, 옛날에는 집 부엌에 라디오를 설치해 크게 틀어놨었어요. 그리고 식사시간이 되면 라디오를 끄죠. 식사시간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우리 부부는 공무원 농사꾼
강씨는 ‘우리는 공무원 농사꾼”이라고도 말한다. 아침잠이 많아 대부분 새벽부터 일하러 나가는 농사꾼들과 다르게 아침 8시 정도 돼야 일을 하러 나가다보니 붙여진 별명이란다. 

“결혼 할 때 시아버님께서 선물을 고르라고 하셨는데, 제가 자명종 시계를 골랐어요.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었거든요. 결혼 후 4개월 동안 시어른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당시 시어머니께서 일찍 일어나시면 시아버지께서 저희들 깬다고 못나가게 하셨답니다. 유난히 저희들이 아침잠이 많아요. 그래서 공무원 농사꾼이라고 저희들끼리 부르는 거예요.”

‘공무원 농사꾼’을 설명하면서 강씨는 시부모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을 한참 이야기 했다. 또 시부모를 포함해 형제자매들이 유독 가족애가 좋다고도 덧붙였다.
“저희 부엌에 가마솥이 있어요. 옛날부터 사용하던 것이죠. 옛날에 아버님께서는 멀리 외출을 할 때면 꼭 나무를 확인하셨어요. 없으면 잘라주고 가셨죠. 참 자상하셨습니다. 또 시집와보니 우리 방만 연탄아궁이고, 남편이 항상 연탄을 가는 거예요. 그러면서 ‘애를 낳을 몸이니 조심해야한다’고 말하더군요. 나중에 보니 큰댁도 시아주버니께서 항상 연탄을 가신다더군요. 가족들이 서로 아끼고 위해주는 모습이 정말 좋았어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생활의 활력소 ‘생활개선회’
그는 생활개선회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고, 현재 군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시골에 오니 농사 외에 할 일도 갈 곳도 없더군요. 그러다 생활개선회를 알게 됐고, 활동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어요. 무엇보다 남편의 이해와 도움이 컸고요.”

생활개선회 활동을 위해 그는 남편에게 ‘가끔 콧바람을 쐬야 한다’고 조율을 했단다. 대신 교육·회의를 가기 전 할 일은 완벽히 마무리를 하고 나간단다. 때문에 계속 활동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구기자를 활용해 만든 초콜릿 판매 및 체험 운영으로 농가소득을 올리고도 있다. 군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한 ‘자원식품을 이용한 농산물 가공’연수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고, 교육과 선진시설 견학을 거쳐 2011년부터 제품을 만들어 직거래 형식의 판매와 체험을 하고 있다.

“체험과 직거래로 조금씩 하고 있어요. 상품화도 생각해봤지만 그것은 어려울 것 같아요. 제조공장 등 조건이 까다롭거든요.”

강씨는 “앞으로도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한다. 또 “가족 모두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이 최고의 바람”이라고 덧붙인다.

결혼 27년차인 강씨는 이렇듯 남편 안씨와 함께 농사를 짓고, 사회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또 두 아들인 순규(중앙대 4)·순만(공주대 식물자원과 4) 씨도 부모의 모습을 닮아 매사 긍정적이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이웃을 돌보며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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