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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의 원활한 통치위해 대전입지 결정"

충남도청 이전(5) 대전지역 유치활동

2012.11.01(목) 17:20:11 | (이메일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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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이 이전한다는 공식 발표이후 대전에서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당시 동아일보는 대전의 상황을 “희열의 대전! 시민은 작약(雀躍), 추운 겨울에도 봄눈이 오듯” “대전시민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열광에 넘치는 희색이 만면” 등으로 보도했다.

대전기성회 건축비 기부금 10만엔 모금 결정

문제는 도청이전 예산이었다. 총독부 예산만으로는 도청이전이 불가능하므로 대전기성회는 도청 이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대전기성회장 시라이시는 1931년 2월 6일 총독부를 방문하고, 8일 대전소학교 강당에서 총독부와의 협의 내용을 보고했다. 이날 보고회에서 기성회는 건축비 명목의 기부금 10만엔을 걷기로 결정했다. 실제 대전 기성회 회원들은 시내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로부터 학교조합비 25%를 기부받고 조선인들로부터 1000엔을 기부받아 청사건축비를 모금하는 대책을 세웠다.
 

대전면협의회와 대전번영회가 중심이 되어 본격적인 시가지 개발을 위한 대전시계획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들이 이후 대전의 도청유치를 위해 운동을 벌인 대전기성회의 모체가 된다. 사진은 대전도시계획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출처 : 충청남도역사박물관)

▲대전면협의회와 대전번영회가 중심이 되어 본격적인 시가지 개발을 위한 대전시계획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이들이 이후 대전의 도청유치를 위해 운동을 벌인 대전기성회의 모체가 된다. 사진은 대전도시계획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 출처 : 충청남도역사박물관)



그러나 2월 18일 중의원(하원)에서 예산안이 전액 삭감되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벌어지자 일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대전기성회에서는 총독부에 도청사 건축비를 기부하겠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총독부는 확답을 회피했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민정당(民政黨) 간부들도 기성회 회원들을 회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전기성회는 총독부 성명을 신뢰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한편, 귀족원을 설득하기 위해 대표단을 일본으로 보냈다. 시라이시 회장과 도평의원 오필영은 2월 19일 도쿄로 가서 귀족원 예산의원을 설득해 중의원에서 삭제된 도청이전비를 확보하려고 했다. 이들은 ‘조선대전시민대표’ 명의의 ‘탄원서’를 귀족원에 제출했는데, 여기에는 예산복원의 내용과 이유가 제시되었다. 즉, 도청의 대전 이전은 총독부에서 경제인구 등 전반을 비교해 결정했으므로 타당하며 중의원에서 예산을 삭제한 일은 총독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총독의 위신 실추는 식민통치의 화근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시라이시 기성회장 귀족들 찾아다니며 예산 부활 설득

변평섭 전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은 그의 저서 <실록 충남반세기>에서 시라이시 대전기성회장의 역할이 컸다고 말한다. 그는 안면이 있는 귀족들을 찾아다니며 “내가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떠날 때 다시는 고향을 찾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오죽하면 그 결심을 바꾸고 다시 찾아왔겠는가? 도청의 이전은 대전의 유일한 희망이다. 조선총독부의 위신과 나 시라이시의 체면을 위해 한번만 살려달라”며 설득했다고 한다.

한편, 사이토총독은 충남도에 전문을 보내 “총독부 근본방침을 변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태도를 분명히 했다. 또 조선총독부는 귀족원을 상대로 로비활동을 펼쳤으며 이와함께 충남도평의회를 소집해 충남도민의 절대 다수가 도청이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공식화하고자 했다. 이때문에 일본에 가있던 공주 시민회장이자 도평의원이었던 마루야마와 공주의 도평의원 미야모토가 평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귀국을 하게 된다.
 

1932년 충남도평의회 의원들 모습(사진 출처  : 충청남도역사박물관)

▲1932년 충남도평의회 의원들 모습(사진 출처 : 충청남도역사박물관)

 

3월 3일 열린 도평의회에서는 도청이전문제가 안건으로 제시됐다. 충남대 국사학과 김나아의 석사논문 “일제하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과 지역사회의 동향”에 따르면 이날 참석하지 않은 도평의원은 오필영(대전), 무라오 이세마츠(대전), 마루야마 도라노스케(공주), 미야모토 겐키치(공주)였다. 이중화(천안)는 본회 중간에 나가서 출석의원은 모두 19명이었다고 한다. 대전의 오필영 등은 도쿄의 귀족원 로비활동 때문에 참석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주의 마루야마와 미야모토가 참석을 못한 이유는 확실치 않다. 아마도 서둘러 귀국을 했으나 3월 3일까지 도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도평의회 출석의원 19명중 13명 도청이전 찬성
 

어쨌든 출석위원 19명중 13명이 도청이전을 찬성하여 안건이 가결되었다. 찬성의원들은 3월 4일 총독에게 청원서를 제출했다. 김나아의 논문에 따르면 청원서 내용은 중의원 예산 삭제에 대해 ▲조선의 특수사정 무시 ▲조선인의 민족적 감정 배격 ▲총독의 권한을 침해해 조선총독의 정책에 지장 ▲총독의 위신 실추로 식민통치의 근본 붕괴 등이다. 따라서 도 평의원들은 총독이 공주의 반대운동과 중의원의 예산삭제와 같은 위기에 흔들리지 말고 도청이전을 단행해야 한다고 청원했다.
 

당시 조선총독부나 충남도 그리고 대전의 입장은 일관되게 “식민통치의 근본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당시 총독부는 조선의 통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충남도청을 철도가 지나는 곳으로 정했다고 한다. 김수진 전 충남도부지사는 “일본이 철도를 내면서 당시 한밭이라는 조그만 지역을 대전으로 명칭을 바꿨는데, 사실상 우리말 말살 정책이었고 철도가 있는 대전으로 도청을 옮긴 것도 총독부의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정책 중 하나”라고 말했다.
 

1910년대 철도가 가설된 대전의 모습. 철도의 부설은 조그만 농촌마을을 도청소재지로 만들었다. (사진 출처 : 충청남도역사박물관)

▲1910년대 철도가 가설된 대전의 모습. 철도의 부설은 조그만 농촌마을을 도청소재지로 만들었다. (사진 출처 : 충청남도역사박물관)


1931년 1월 21일 충남도 내무부장과 경찰부장이 각 군 군수와 경찰서장 앞으로 보낸 ‘도청이전 결정에 관한 건’이라는 제목의 문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수걸 공주대 교수가 쓴 <충청남도지>의 “도청의 설립과 이전”에 따르면 충남도는 이 문서에서 “도청 이전 건은 ‘통치(統治)의 대강(大綱)’에 기초해 ‘대소고소’(大所高所)에서 이미 결정한 것이므로 ‘경거망동’(輕擧妄動)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불온언동’(不穩言動)을 행하는 자는 적당한 방법을 강구하여 ‘간절지도’(懇切指導)를 행할 것을 ‘통첩’(通牒)한다”고 못박고 있다.

우여곡절끝에 귀족원본회의서 예산 부활 가결

우여곡절 끝에 조선총독부와 충남도, 대전시민의 일치된 노력으로 충남도청이전 예산은 3월 13일 귀족원 본회의에서 가결되었다. 이날 총독부 내무국장 명의로 도청이전 예산안 통과 내용의 전보가 도지사에게 전달되었고 당일 충남도 내무과장 명의의 전보가 다시 각 군수에게 전달되었다. 3월 15일자로 <동아일보> <매일신보> <조선일보>도 도청이전비 부활을 알리는 소식을 경향 각지로 전했다.
 
 

도청이전 관계 서류철. (사진 출처 : 충청남도역사박물관)

▲도청이전 관계 서류철. (사진 출처 : 충청남도역사박물관)


그러자 대전은 다시 화색이 돌고 활기가 넘쳐났다. 이제 충남도청의 대전이전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로 굳어졌다. 대전기성회는 4월 5일 대전읍사무소에서 위원회를 열어 도청이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였으므로 해체를 결의하는 한편, 새로이 150명의 유지를 중심으로 ‘도청이전촉진회’를 구성했다.

4월 17일이 되자 총독부의 이마무라 내무국장은 도청예정지 선정을 위해 대전을 방문했으며 토목 측량 기사를 파견해 도청예정지를 조사한 것은 4월 23일이었다. 이러한 조사작업을 통해 5월 15일 충남 대전군 대전면 춘일정 3정목(현재의 대전광역시 중구 중앙로 101)을 도청예정지로 최종 결정했다.

<우희창 미디어센터장>
<참고자료>
김나아 '일제하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과 지역사회의 동향' 충남대 대학원 석사논문. 2011년
변평섭 '실록 충남반세기' 1983년
정내수 '대전의 도시발전' <대전 100년사> 2002년
정운현 '친일파는 살아있다' 2012년
지수걸 '도청의 설립과 이전' <충청남도지> 2010년
지수걸 '일제하 공주지역 유지집단의 도청이전 반대운동' 1996년
충청남도 '도정사료소장품목록' 1997년
충청남도역사문화원 '충청남도역사박물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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