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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시대

도청을 보내던 공주읍민의 아쉬움을 보니

충남도청 이전(4) 이사행렬 순탄치 않아

2012.10.24(수) 10:12:40 | (이메일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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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오후 6시 30분, 대전시 중구 선화동 충남도청 앞 중앙로는 아쉬움과 흥겨움이 엇갈린 묘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있었다. 충남도가 내포신도시로의 이전을 앞두고 대전시민들에게 아쉬운 이별을 고하는 ‘대전시민 석별의 밤’ 행사가 열렸던 것.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는 부여군 충남국악단의 대북공연, ‘유성구문화원 VND 코러스 합창단’, 도청 풍물 동아리 ‘해토’, 대전시청 색소폰 동호회, 도청 밴드 ‘뮤즈앙상블’, 대전 무지개 소년소녀합창단의 공연과 더불어 유명 가수들의 공연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대전시민 등 2만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대전시민과의 석별의 밤 아쉬움속 축하도 흔쾌히

 
이날 행사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그간 대전시민 여러분과 함께 한 것을 감사드린다”며 “도청이 어디에 있든 대전시와 형제처럼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도시와 농촌, 도시산업과 농업은 더욱 긴밀하게 함께 가야한다. 그래야만 농어업과 농어촌 농어민이 살고, 도시도 발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염홍철 대전시장은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 한지 80년 만에 내포신도시로 이전하는데, 기대던 형님을 떠나보내는 것 같아 섭섭하다”며 “이제는 대전과 내포, 세종, 청주 청원 등 충청권 4개 도시가 중심이 돼 충청도 시대를 열고 국가발전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성공 이전을 기원했다.
 
이렇듯 떠나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모두 아쉽지만 흔쾌한 마음을 내보였으며 이날의 행사도 축제 분위기로 마무리 됐다.

대전시민 석별의 밤 행사가 충남도청 앞 중앙로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대전시민 석별의 밤 행사가 충남도청 앞 중앙로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염홍철 대전시장 등과 수많은 대전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전시민석별의 밤에서 아쉬움과 기쁨을 함께하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 염홍철 대전시장 등과 수많은 대전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대전시민석별의 밤에서 아쉬움과 기쁨을 함께하고 있다.
 

대전시민석별의 밤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전시민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다.

▲대전시민석별의 밤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전시민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다.


 
그러면 80년전 도청을 떠나보냈던 공주에서는 어땠을까? 지금과 같은 축제 분위기의 이별식은 꿈에도 상상 못할 장면이었을 것이다. 9월 17일 조촐한 석별연이 열렸을 뿐이라고 기록되고 있다. 오랜 세월 충남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대전으로 넘겨주는 운명이었던 만큼 공주사람들의 심정은 비통한 것이었다.
 
변평섭의 저서 ‘충남반세기’에도 공주의 분위기는 몹시도 침통했다고 적고 있다. 다음은 최종 이사 전날과 당일에 대한 그의 기록이다.
 
오카사키 지사 "공주에 있든 대전에 있는 여러분의 도청"
 
오카사키 충남지사는 9월 30일 가족들을 대전의 도지사 관사로 이사시키고 난 뒤, 시내 술집 상춘관(常春館)으로 공주시민회 간부들을 초대해 술자리를 베풀었다. 그날 밤의 고별 연회는 우울한 가운데,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오카사키 지사는 “그간 여러분의 투쟁은 뜨거운 애향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모두 이해한다. 이제 과거의 그 감정들을 깨끗이 씻어버리자”고 말했다. 그는 또 “도청이 공주에 있든, 대전에 있든 여러분의 도청이니 앞으로도 계속 도와달라”고 당부한 뒤, “앞으로 공주의 발전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그날 오카사키 지사는 공주에서의 마지막 밤을 술집에서 자고, 이튿날 마지막 아침식사도 술집에서 해결했다. 그리고는 아침 일찍 지사 관사로 갔는데, 그곳에는 공주에 있는 기관장, 유지, 시민회 간부들이 지사를 배웅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10월 1일 오전 9시, 지사는 찾아온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작별을 고한 뒤, 차에 올랐다. 떠나는 지사차량 일행을 공주 읍민들은 착잡한 표정으로 배웅했다.

 

1920년대 공주에 있던 충남도지사 관사의 모습

▲1920년대 공주에 있던 충남도지사 관사의 모습 (사진출처 : 대전 100년사) 


 
오카사카 지사는 차량이 마티고개를 넘어 동학사 입구 박정자에 이르자 차를 세우도록 했다. 차에서 내린 지사는 경호를 위해 뒤따라오던 가와야마(川山) 공주경찰서장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그리고는 맥주를 내놓고 이곳까지 따라온 경찰서장 일행과 공주 유지들에게 술 한잔씩 따라주었다. 자신의 잔에도 맥주를 가득 채운 뒤 건배를 제의했다. 그 순간 오카사카 지사의 눈에는 눈물이 흘렀다.
 
오카사키 데츠로(罔崎哲郞), 그는 동경제대 출신으로 무척 억센 성격이었다고 한다. 향토사학자 김영한씨는 “도청 이전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기 위해서 물렁물렁한 조선인 도지사 보다는 불같은 성격의 도지사가 필요하다는 총독부의 판단으로 임명된 도지사였으니 그 성격이 어떠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어렸을 적 친구들 중 성격이 억센 아이가 있으면 등에다가 ‘罔崎哲郞’라고 써 붙이고 놀려댔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주민들 도로 파헤치는 등 마지막으로 저항하기도

이에 앞서 공주에 있던 충남도청의 이전은 9월 24일부터 이뤄지기 시작했다. 300여명의 도청직원들이 총동원되어 책상, 서류상자 등 집기를 수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사는 순탄치 않았다. 첫날부터 공주-대전간 신작로가 깊에 파헤쳐져 이를 복구하느라 반나절이나 시간을 소비했다. 어떤 날은 삽재고개에 바윗돌이 쌓여져 있어 애를 먹기도 했다.
 
지금이야 공주와 대전의 경계인 삽재고개가 그다지 높지 않은 고개지만 당시에는 엄청 높고 험한 고개였다. 김수진 전 충남부지사에 따르면 “김갑순이 공주사람들에게 미움 받혀 공주에 머물지 못하고 유성 별장에서 살 듯이 했는데, 도청 이전을 위해 이 고개를 200번 이상 넘나들었다”며 “얼마나 고개가 험한지 어려서 ‘삽재고개 납작고개 아부나이까 소로소로(危ないか そろそろ-위험하니 천천히)’라는 노래도 많이 부르고 다녔다”고 한다.
 
낮에 이삿짐을 옮기면 공주사람들을 자극한다 하여 야간에 이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행방해 사건이 자주 생기자 다시 주간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의 경계가 삼엄해졌다. 수송차에는 공무원과 무장경찰이 함께 탑승했고 위험한 지역에는 아예 경찰관을 배치했다. 일부는 위험한 마티고개와 삽재고개를 넘지 않고 논산으로 돌아 대전으로 이삿짐을 옮기기도 했다고 김영한씨는 증언했다.
 
도청이 이사하면서 도청직원들도 이사를 해야 했다. 대전의 집값과 땅값이 마구 뛰었다. 새로 집을 마련하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선화동과 대흥동 인근에 도청 일반 직원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 반면 이때 공무원들의 집중적인 이사 때문에 화물자동차 업주들이 많은 재미를 봤다. 물론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던 김갑순이 최대의 수혜자인 것은 명백하다.

80년이 지난 2012년 10월, 도청 이전 예정지인 내포신도시는 새로이 올 식구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청 신청사는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아파트들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새로운 100년이 시작될 내포 신도시 시대가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

<우희창 미디어센터장>

 

 내포신도시 지역에 건설중인 충남도청사 모습.

▲ 내포신도시 지역에 건설중인 충남도청사 모습.


 

<참고자료>
김나아 '일제하 충남도청의 대전 이전과 지역사회의 동향' 충남대 대학원 석사논문. 2011 년
변평섭 '실록 충남반세기' 1983년
정내수 '대전의 도시발전' <대전 100년사> 2002년
정운현 '친일파는 살아있다' 2012년
지수걸 '도청의 설립과 이전' <충청남도지> 2010년
지수걸 '일제하 공주지역 유지집단의 도청이전 반대운동' 1996년
충청남도 '도정사료소장품목록' 1997년
충청남도역사문화원 '충청남도역사박물관'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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